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치유의 구원 “주님과 만남의 여정” |
---|
2025.1.10.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1요한5,5-13 루카5,12-16
치유의 구원 “주님과 만남의 여정”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로우시다.”(시편112,4)
오늘 옛 어른의 지혜도 신선합니다. “회복이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 확실하게 결별하는 것이다.”<다산> 이것은 회복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회개하여 새롭게 주님을 만나는 이들에게는 늘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군자는 바른 성정을 회복함으로써 뜻을 조화롭게 하고, 좋은 무리를 따라서 그 행실을 이룬다.”<예기> 주님을 따르는 좋은 도반들의 공동체에 속한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루카복음은 “나병환자를 고치시다”라는 주제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치유의 구원을 받은 나병환자가 상징하는바 우리 약하고 병든 우리들입니다.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란 말마디가 그 병의 심각성을 알립니다. 중요한 사실은 나병환자가 절망하여 자포자기함이 없이 절박한 믿음으로 주님을 찾았고 만났다는 것입니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니, 그대로 예수님께 대한 전적 신뢰의 표현입니다. 일방적인 주님의 기적은 없습니다. 치유의 구원에 선행하는 병든 자의 간절한 믿음입니다. 그대로 주님과의 만남인 미사장면을 상징합니다. 이런 절박한 자세로 미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똑같은 주님께서 미사를 통해 우리를 만나 치유의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시니 주님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십니다. 왜 오늘날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순전히 우리의 믿음 부족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측은히 여기는 마음, 따뜻한 스킨쉽, 능력의 말씀이란 세요소가 나병환자의 믿음과 하나되어 일어난 치유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치유활동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늘 강조하시는 치유의 구원에 결정적인 하느님의 세 특징, 친근함(closeness), 연민(compassion), 부드러움(tenderness)이 잘 드러납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우리에게는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을 만나는 목적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는 것, 둘임을 깨닫습니다. 둘인 듯 하지만 실은 하나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치유의 구원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주님이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유혹됨이 없이 즉시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신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우리에게는 참 귀한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나병이 상징하는바 우리의 온갖 영육의 질병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야 치유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마음과 몸은, 영혼과 육신은 하나입니다. 길을 잃고, 희망을 잃고, 빛을 잃고, 기쁨을 잃고, 평화를 잃고 죄의 어둠 중에 방황함으로 마음이, 정신이, 영혼이 병들 때 뒤따르는 육신의 갖가지 병들입니다. 죄가 많으니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니 영육의 병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 단 하나, 주님을 찾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길, 우리의 희망, 우리의 빛, 우리의 기쁨, 우리의 평화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했던, 늘 바쳐도 늘 새로운 행복기도문 한 대목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전부입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사도 요한도 제1독서에서 영적승리의 삶에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역할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설파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은 이러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모실 때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실 때, 그대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모시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한 두 번 만남으로 치유의 구원이 아니라,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생명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 배우고 회개하고 치유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주님과 만남의 여정은 배움의 여정이자 회개의 여정, 치유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 만남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시며, 치유의 구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네. 하느님이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1요한4,9).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