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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과 견해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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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함과 부족함 사이에는 저울과 계산이 있고완전함에 대한 이해관계와 만족스러움에 대한 가치평가가 있다 Simple life is high thinking 큰 틀에서는 국민들의 삶의 행복과 삶에 대한 만족은 크게 다른 차이도, 이의도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어떤 정치적 선택과 종교적 선택을 하더라도, 그리고 어떤 선호도와 취향을 가지고 있든, 그 어떤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든 말이다 어떤 패러다임과 프레임도 그러한 기본적인 틀의 확립과 보존 속에서 국민들의 불행과 불만을 야기하지 않는 한 수용을 거부할 필요도, 공유를 제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삶의 보편적 입장이나 형편을 심각하게 위태롭게 하고 일상생활과 산업일반에 그렇게 삶의 터전과 현장에 위화와 위험을 초래하고 파생하며 불합리와 불이익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제한이나 금지와 같은 의도적 관리와 제재를 받아야 마땅할 사안이나 사건, 사태로 판단되고 시스템적으로 철저한 작용과 작동이 있어야 할 대응태와 적용태를 확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일들 또한 세상에는 태반이며 인간들 사이의, 집단들 사이의 모든 갈등과 대립, 다툼과 충돌에도 최종적으로는, 인간들 스스로의 선택지와 대책안도 그러한 시스템 차원으로 귀속되어 그 해결과 처리를 담보해 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의 통상적인 모습이다 그런 세상살이를 살고 있다는 현실감각은 몸의 균형을 잡는 평형감각만큼이나 중요하다 실력과 무능의 실제 능력이 필요한 지점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일단은 그 실력이 없다는 평가가 합리에 맞는 이해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혼란이 계속되고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그 혼란이 수습될, 정리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혼란 속에 있는 실제는 무능함이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그 무능함의 실체를 이룬다 그래서 가장 보기 거북한 무능함과 무능함의 충돌은 그 모든 혼란 속에서 그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없어 보일 것 같은 절망감과 우울함을 배가한다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진 모든 이들을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분명 어리석음과 무지가 충분히 보이고 드러나지만, 그런 만큼 지헤로움과 현명함도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지헤로움과 현명함, 그리고 지성과 양심이라는 것, 그리고 미덕과 인정이라는 것, 그렇게 사람이 실제로 지니고 있는 것들, 선한 측면의, 선의를 이룰만한 좋은 인간성들이 발휘되거나 증진되어 삶이나 세상 일들을 양화시키는 데 반영되지 않고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 데에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관습과 문화가, 그런 세태와 시류가, 그런 양태와 관행이 그런 데에 널리 퍼져있다는 말이다 스마트한 자들이 보편적 인간성을 저버리고 상실하면 대체로 사회 저변의 반사회적, 반동적 범죄자가 되어 그 악함을 더욱 악랄하고 교활하게 만드는 지능적인 빌런들이 되기가 쉽다 그런 악당들화가 되면 인간성의 선의와 양화를 바라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수습불가능한 혼란, 그런 것이 과연 있는 세상일까 하마스의 테러로부터 팔레스타인의 정치체제는 하마스라는 무장, 전시 정치집단이 집권세력으로 자리할 때부터 그 문제의 심각성을 가지고 있었다 중동, 이슬람문명권이라는 지역에는 팔레스타인 뿐만이 아니라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등 대체로 지중해에 붙어 있는 지역들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심각한 내란과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들이 많다 정치적 안정은 국가의 발전에도 아주 중요한 요인인데, 그 첫번째 스텝이 꼬이고 섥혀 국가 전반이 엉망진창이 된 국가들인 것이다 동남아 쪽에서도 지금도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내전국이나 분쟁지역이 많다 다들, 국가가 엉망진창, 사분오열이 되어 그 도탄의 도가니 속에서 사는 그 국가들의 국민들만이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수습불가능한 지경의,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암담한 정치현실 속에 있는 국가들 가운데, 팔레스타인은 나름의 사연들을 가지고 쑥대밭이 되고 폐허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하마스는 무모하게도, 아무 발전적 전망도, 게획도 없이, 이스라엘의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납치하는 테러를 저질렀다 1400여 명에 이르는 그 많은 사람들을 말이다 어느 국가가 가만히 있겠는가 자국민이 그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당했는데 말이다 이스라엘은 즉각적으로 보복에 보복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앙금은 더 이상 치유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서로가 같은 땅에서는 못 살 정도로 말이다 인권주의자들이나, 평화주의자들, 박애주의자들은 그 현실의 생생한 의식과 감정들을 모른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려도 결코 봉합될 수 없는 앙금과 반감과 적대의 현실감각들을 말이다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은 더 이상 같은 땅에서는 어려워 보인다 서로가 경계선 밖에서 살고 있는데도 지금처럼 극단적 현실이 멈추지 않는데, 한 우리, 한 테두리는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때, NYT에서 트럼프의 해결책을 두고 '가장 뻔뻔스러운 아이디어'라는 혹평이 나온 것이다 트럼프의 가자수술은 아주 간단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암적인 존재일 수 밖애 없는 현실, 절대로 천년이 더 지나간다 해도 바뀔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에, 트럼프는 외과적 수술을 그 아이디어로 내놓은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문제가 더 되는 쪽으로 보인(하마스가 먼저 극단적 테러를 저질렀으니) 팔레스타인을 강제 이주(수술의 핵심)시키고 그 지역을 '중동의 리베이라(휴양지)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수술인 것이다 뉴스를 처음 접하고도 그 기발한? 수술에 경탄도 감탄도 아닌, 저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누구나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란 바로 이런 생각이구나 하는 그런 깜짝놀라움 말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혼란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모두에게 이로운 해결책이란 극히 드물었다 모든 폭동에는 강력진압이 대체로 해결책이었다 보통 지배자적 입장에서 그 반동들의 저항을 난으로 보고 현질서를 주도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더더군다나 그 통치이념이나 공권력에 대항하는 것들을 반체제, 반사회적 반동들로 제압하고 진압하는 것이 또한 현질서의 유지와 그 체제수호의 사명과 의무라고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하에서든, 그 어떤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지배에서든 그런 입장은 마찬가지란 사실이다 그래서 언제나 인간들의 지성과 양심이 인간성의 선의와 양화를 실현한는 편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성과 인간삶의 선의와 양화를 위한 저항과 투쟁은 인류사의 변증법적 측면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인간성과 인간삶의 선의와 양화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면 언제나 인간삶의 모든 문제나 세상사의 모든 문제는 그 악화와 그 극단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현세계에서도 그런 지옥같은 현실들은 바로 인간들 스스로의 입장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모두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트럼프의 가자수술까지 그 대책으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영국은 20세기 중반에 자국의 점령지였던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에게 무상?으로 양도?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2차세계대전 당시 유다인들에 대한 홀로코스트는 극단적인 만행이었다 그런 유다인들에게 국가를 이룰 땅을 선사해 준다는 것은 강대국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다인들 스스로가 어느 세월에 자기네 땅을 찾거나 마련할 수나 있었겠나 그리고 누가 아무 이유 없이, 힘들게 차지한 땅을 남에게 거저 주겠는가 유다인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겪었던 일들을 보며 영국은 그렇게 자국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시작이 되어서 중동에는 지금까지 그 유다인들의 이스라엘과 숱한 분쟁들이 지금까지 현재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들에겐 축복이 되었을 일이, 누군가들에게는 불행과 재앙이 되는 일로, 그리고 누군가들의 선의?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 그렇게 역사속에서는 그 아이러니의 쟁점들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도 보이지 않고(당사자들끼리의 정치, 종교적 신념만이 있을 뿐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지도 보이지 않는, 그 밑도 끝도 없는 반목과 대립과 충돌은 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도 끝나거나 멈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그런 현실을 사는 당사자들끼리 그 계속되는 역사의 현장에서, 도가니에서 그 당사자들로 살아가면서 계속 그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야 살 수 있음에도 말이다 어느 한 편만을 위한 정의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이의 정의, 모두의 정의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모든 혼란에도 정의는 변함없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 또한 어떻게든 정의를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삶은 무의미할 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