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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개안(開眼)의 여정 “무지(無知)에 대한 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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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19.연중 제6주간 수요일
창세8,6-13.20-22 마르8,22-26
개안(開眼)의 여정 “무지(無知)에 대한 답은 개안뿐이다”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시편116,17ㄱ)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치십니다. 상징하는 바, 참 깊고 오묘합니다. 점차 눈이 열려 좋아지는 시력은 그대로 개안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그동안 참 많이 강조했던 ‘마음의 병’이 무지였습니다. 마음을 눈멀게 하는 마음의 치명적 병이 바로 무지입니다.
바로 무지의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우리를 눈멀게 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눈뜬 맹인들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따라 보는 눈이요 마음따라 듣는 귀입니다. 마음의 눈, 심안이 날로 좋아져야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색맹, 문맹, 맹신, 맹목...모두 눈멀 맹자가 들어갑니다. 분별이 불가능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온갖 불행의 원인은 무지의 눈멈에 기인합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은 배움의 여정과 함께 가는 지혜와 자유를 보여줍니다. 역시 개안의 여정에 끊이없는 배움이 좋은 도움이 됩니다.
“배움에도 용기가 필요하듯, 용기에도 배움이 필요하다. 무모한 용기를 앞세우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어지럽힌다.”<다산>
눈먼 무지의 무모한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을 어지럽히는지 작금의 현실이 증명합니다. 정말 편견, 맹신등 무지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래서 날로 지혜로워지는 배움의 여정을, 진리탐구 여정의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맨몸으로 범을 잡고 강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 않는다는 자와는 함께 하지 않겠다. 신중하게 계획을 잘 세워 일을 이루는 사람과 함께 하겠다.”<논어>
맹목의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현실주의적 현자 공자의 지혜로운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사실 공부의 목적도 무지의 눈을 밝히는 개안에 있음을 봅니다. 회개와 깨달음의 여정 역시 날로 밝아지는 심안을 말해줍니다. 과연 날로 밝아지는 개안의 여정에 날로 좋아지는 영적 시력인지요? 육안은 어둬져도 심안은, 영안은 날로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영적성장에 도약이나 비약은 없습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라기 보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입니다. 나무가 자라는 이치만 봐도 분명합니다. 점차적인 과정중 성장이요 성숙이듯 개안의 영적 현실도 그러합니다. 초기 교회에서 예수님의 눈먼이에 대한 치유는 회개의 상징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맹인이 예수님께 치유되어 점차적으로 눈이 열려 시력이 좋아지는 경우는 바로 세례후 점차 좋아지는 개안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세례성사로 무지의 눈이 열린후 평생 성사인 성체성사, 고백성사가 개안의 여정에 얼마나 결정적 도움이 되는지 깨닫습니다. 오늘 창세기 홍수가 그친후 노아의 이야기 역시 초기 교회에서는 세례의 상징이었습니다. 방주안에서 물로부터 구원받은 노아는 즉시 지상의 표면을 걷지 않고 점차적인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때가 되자 물이 마른후 비로소 지상에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세례의 물로 구원받은 우리 역시 하느님이 만든 동터오는 새벽의 새날을 신뢰로서 걷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평생 한결같이, 끊임없이, 개안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해야 함을 배웁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성공적 개안의 여정이 될 수 있도록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후반부 노아의 봉헌제사시 봉헌의 향내를 맡으며 하신 주님의 다짐이 참 좋은 묵상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얼마나 주님의 자비롭고 섬세한 배려의 사랑인지요! 주님은 인간의 내적 악의 현실을 이해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잘 살아보라고 선물처럼 주시는 삶의 기회들입니다. 자연리듬, 계절의 자연스런 흐름처럼 무리하지 않고 순리대로 살면서 공동의 집인 지구를 잘 관리해야할 막중한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지요? 무분별한 탐욕으로 지구 자원의 오용과 남용으로 인해 섬세한 균형과 조화는 깨지고 기후위기등 지구의 병도 날로 깊어져 가는 위중한 상황입니다. 개안의 여정에 필히 생태적 회개의 여정이 함께 가야함을 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한한 탐욕에 따라 살 것이 아니라 개안의 여정과 더불어 자연리듬, 자연의 흐름에 따라 순리의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많이 기도하고 많이 공부하고 많이 나누면서, 동시에 적게 쓰고 적게 먹고 적게 활동하면서 관상적 지혜의 내적 삶에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개안의 여정, 회개의 여정에 참 좋은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에페1,17-18).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