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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5일 (토)
(자) 사순 제1주간 토요일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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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신앙생활의 목적은 ‘구원의 은총’을 얻는 것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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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2-19 ㅣ No.180198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마르 8,29-33).”

1)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은, “너희는

왜 나의 제자가 되었느냐?”, 또는 “너희는 왜 나를

따르느냐?”입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베드로 사도의 대답은,

“저희는 스승님이 ‘그리스도(메시아)’ 라고 믿기 때문에

제자가 되었고, 스승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또는 “저희는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스승님을 따릅니다.”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하시는 질문으로

바꾸면, “너희는 왜 성당에 다니느냐?”,

또는 “너희는 왜 신앙생활을 하느냐?”입니다.

대답은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에”이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또는 신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현세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교리를 잘 모르고, 구원이 무엇인지,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때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더라도 교리를 배우고 성경을 배우고

예수님을 알고 만나면서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냥 현세적인 소원을 비는

것으로 멈추어 버리면,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여기서 ‘불쌍하다.’는 말은 ‘어리석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외면하고 현세적인 것만

원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만

바라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쌍한 일입니다.

<‘구원의 은총’은 신앙인이 얻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신앙생활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병이든지 어떤 사고든지 여러 가지

급박한 상황이 생길 때가 많고, 그럴 때에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여정을 더 잘하기 위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만을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신 것은, 당신을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은

당신의 수난, 죽음, 부활 후에야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먼저 믿어야만

‘예수님은 그리스도’ 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할 자격이

생긴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을 모두 체험하고

믿음이 완성된 다음에 만들어진 책입니다.

기록할 때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기록한 것일 뿐이고,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 때마다 받아 적은 것도

아니고, 어떤 일을 하실 때마다 적은 현장 기록도 아닙니다.

‘성전 정화’ 장면에 바로 그것을 나타내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요한 2,22).”

3)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말리다가

크게 혼난 일은, 그때까지는 ‘머리로만’ 믿고,

아직 ‘삶으로’ 믿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사탄’이라고 부르신 것은,

그가 마귀 들렸다는 뜻도 아니고, 사탄의 길을

걷고 있다는 뜻도 아니고, 그가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이 사탄이 하는 행동과 같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사탄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내게서 물러가라.”는 “제자의 본분을 지켜라.”입니다.

제자는 스승이 가는 대로 뒤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세속에서는 제자가 스승보다 앞설 수도 있지만,

신앙인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뒤를 잘 따라가면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6-17).”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마태 10,24-25)”

4) 여기서 ‘하느님의 일’은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로 바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이고,

‘사람의 일’은 사도들의 ‘인간적인 애정과 판단’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직 십자가 수난의 의미를 모르던 때였고,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십자가의 길’을 말렸을 뿐입니다.

<나중에 모든 것을 깨달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을 때에는,

‘온 삶’으로 예수님 뒤를 따르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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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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