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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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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에 유아세례 주었던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며, 아이의 할머니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잠시 추억에 잠기며, 유아세례 주었던 아이와 찍었던 사진을 보았습니다. 아이도, 저도 해 맑게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은 가장 좋은 추천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년이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16년 전의 사진을 보며, 배우 ‘손지창’ 닮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배우 ‘더스틴 호프만’ 닮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의 얼굴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건 저의 표정이 웃는 모습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굴 때문에 유명해진 그림이 있습니다. 아마 짐작하시는 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저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원본을 보았습니다. 표정으로 유명해진 그림도 있습니다. 아마 짐작하시는 대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입니다. 뭉크의 절규는 얼굴이라기보다는 표정에 가깝습니다. 거울 보고 활짝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얼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표정을 통해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얼굴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얼굴’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을 뜻합니다. 시편 27장 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셨으니, 주님, 당신 얼굴을 찾나이다." 우리는 신앙 여정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모세는 하느님과 대면하며 대화했고, 그 만남 후 그의 얼굴은 빛났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즉, 예수님의 얼굴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사람의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깊어질수록 얼굴은 더 평화롭고 기쁨에 차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얼굴과 표정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도 강조하셨듯이, 신앙인의 얼굴이 어두우면 다른 이들이 하느님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기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고,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아픔이 서려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슬픔을 겪으며 병고를 아는 이였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할 때, 우리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굶주린 이의 얼굴, 병든 이의 얼굴, 외로운 이의 얼굴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성녀는 늘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그들을 돌보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표정과 태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불친절한 얼굴이 아니라, 희망과 자비가 담긴 얼굴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얼굴을 남겨 주셨습니다.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빵을 떼실 때야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도 성체 앞에 머물며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분과 깊이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얼굴은 하느님을 증언하는 도구입니다. 신앙인의 얼굴은 두려움과 불안이 아닌, 사랑과 희망으로 빛나야 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이웃을 향해 따뜻한 얼굴과 사랑의 표정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