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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31일 (월)
(자) 사순 제4주간 월요일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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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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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3-28 ㅣ No.181084

* 오늘의 말씀(3/28) : 사순 제3주간 금요일

* 제1독서 : 호세 14, 2-10

* 복음 : 마르 12, 28-34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이렇게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 신앙의 원천을 밝혀줍니다. 곧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되는 그 바탕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오늘 <입당송>에서도, <제1독서>와 <화답송>에서도, <복음>에서도, 같은 내용의 말로 반복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호세 14,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화답송>에서는 “내가 주님, 너희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올렸다.”(시 81,11)라고 노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라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동의 원리로서의 계명을 말씀하기 전에, 먼저 ‘존재의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행동규범으로 사랑을 말씀하시기에 앞서,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곧 그분이 주 하느님이심을 먼저 밝히십니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마르 12,29)

이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신 우리 주님이시라는 그분의 존재차원을 밝히고 있는 동시에, 우리의 존재의 차원도 밝혀주십니다. 곧 우리가 그분의 것, 그분의 소유라는 존재를 밝혀줍니다. 그것은 곧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당신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그렇게 내 이웃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소유가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계명으로 주어집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와 있다’고는 말씀하시지 않고,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어쩌면 율법학자에게 아직 사랑의 실천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그가 인간의 행동규범으로서의 계명을 깨닫고 있을 뿐, 그 계명의 이유인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곧 먼저 사랑 받은 존재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곧 그는 ‘자신의 사랑’을 사랑의 시금석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15,12)는 ‘하느님의 사랑’을 사랑의 시금석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 환호송>에서 말하는 회개는 한 마디로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호세 14,2) 입니다(회개를 나타내는 ‘metanoia’의 구약성경의 단어인 ‘tesubah’의 원래 뜻).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본질적으로 단지 윤리적 행동의 뉘우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돌아옴 곧 존재에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사랑이신 우리 주님, 하느님께로 돌아와 찬양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주님!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안에 한 형제가 되게 하소서.

사랑이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한 몸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내 자신의 몸인 이웃을 내 몸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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