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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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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금요일] 요한 7,1-2.10.25-30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오늘 복음의 시간적 배경은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이집트를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던 어려운 시절에 함께 해 주시며 보살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또한 이 세상에 지은 집은 잠시 머무르다 갈 ‘초막’일 뿐이며 영원히 머무를 참된 집은 하느님 나라에 지어야 함을 되새기기 위해 지내는 축제입니다. 그러기 위해 유다인들은 초막절이 되면 멀쩡한 집을 놔두고 집 밖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일주일 동안 지냈습니다. 자기들이 어디로부터 나왔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만 이 세상의 초막에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 뜻에 충실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유다인들은 초막절의 본뜻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심고 짓고 하는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자기들이 돌아가야 할 본향인 ‘하느님 나라’를 소홀히 여긴 겁니다. 대신 어떤 사람이 태어난 지역이 어디이며 어느 가문 출신인가 하는 점들이 더 중요해졌지요. 그런 점들을 바탕으로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신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가 누구이며 어떤 분이신지를 식별하고 판단하는데에도 세상의 기준을 적용하려고 듭니다. 그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 메시아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짠’하고 등장해야 하며, 아무도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몰라야 했습니다. 또한 그는 임무를 완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현존 안에 숨겨진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래아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 성경에서는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자렛’ 고을 태생으로 알려져 있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 대한 그런 몰이해가, 자기들이 예수님이라는 분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이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되려면 제대로라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어설프게 알았기에 병이 된 셈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의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분이 누구로부터, 무엇을 위해 파견되어 오셨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에 대해서도 똑바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모든 걸 다 아는 양 똑똑한 ‘척’을 하며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질 않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중요한 건 어디에서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누구로부터 왔는가입니다. 어떤 조건과 배경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가입니다. 하느님은 단지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고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음을 알고 그분 뜻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당신 나라에 받아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머리에 지식을 쌓을 게 아니라, 하느님 뜻을 따르는 충실한 생활로 하느님 나라에 보화를 쌓아야겠습니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믿는 것이고 믿는 것보다 중요한 건 행하는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