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2일 (월)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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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나란 존재는 과연 누군가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고 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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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5-11 ㅣ No.182114

 

성소 주일을 맞아 제 지난 성소 여정을 돌아봅니다. 참으로 과분하고 감지덕지한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나처럼 나약하고 부족함 투성이인 존재, 정말이지 부당한 존재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그저 감사밖에 드릴 수 없는 나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라는 존재는 과연 누군가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고, 더 나아가, 젊은이들 마음 안에 ‘그래, 나도 저렇게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자문해봅니다.

젊은 사제 돈보스코는 토리노에 있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성당 제의방에서 바르톨로메오 가렐리라는 한 가련한 아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어딘지도 모르고 엉겁결에 제의방으로 들어온 길거리 소년은 제의방지기에 의해 강제로 쫒겨납니다.

그 모습을 본 돈보스코는 그 아이를 다시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유명한 돈보스코와 아이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세상 따뜻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이름이 뭐냐? 어디서 왔냐, 부모님은 살아계시냐?...

돈보스코의 친절함 앞에 잔뜩 경직되어 있던 아이는 순식간에 무장해제가 되고, 돈보스코는 아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 잡습니다. 촌각의 순간에 둘은 절친이 되고, 스승 제자 사이로 발전합니다.

교구 신부님들께 한 말씀 드릴 기회가 오면 저는 어김없이 돈보스코와 바르톨로메오 가렐리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소개합니다. 신부님들께 미사 직전 제의방에서 5분, 10분 동안 복사 아이들과 어떤 대화를 하시는지 물어봅니다.

거룩한 미사 직전이니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대침묵 속에 서 있는 것도 괜찮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부담스럽고 힘든 순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지만, 자상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안부와 근황을 물어보고, 아이의 삶에 큰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준다면, 아이 입장에서 얼마나 기쁜 일이 되겠습니까?

신부님 가까이에서 복사를 서는 아이들은 어쩌면 사제나 수도성소로 초대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준비된 아이들입니다. 우리 사제나 수도자들이 그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큰 사랑과 관심을 갖는다면, 나머지 일들은 하느님께서 반드시 하실 것입니다.

아이들도 다 보는 눈이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 사제가 지극정성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그 미사를 충만한 기쁨으로 거행한다면, 그리고 미사의 정신을 구체적인 사목활동 안에 잘 실천한다면, 아이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분명히 큰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성소는 그렇게 시작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초유의 팬데믹과 탄핵 정국으로 인한 대혼란의 시대를 거쳐오며 기진맥진해있는 오늘 우리나라의 양들을 위해 더 많은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의 큰 부족함이나 나약함 앞에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껄껄 웃으며 용서해줄 수 있는 착한 목자, 양들의 방황과 일탈 앞에서도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는 착한 목자를 필요로 합니다.

성소 주일을 맞아 많은 분들이 큰 걱정을 넘어 탄식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 발표된 한국천주교 통계자료 예비 사제·수도자 현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최근 지망자 숫자가 현격히 감소한 것입니다. 어느 한 지표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하락세가 심각합니다.

안 그래도 노령화 시대, 현직에서 물러난 사제·수도자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입회자 숫자는 거의 절벽 수준이다 보니, 현상 유지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수도회·수녀회들에 있어 공동체나 사업체의 축소나 통폐합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다들 속수무책인 현실을 두려운 시선으로,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낙담만 하고 있어서도 안 될 일입니다. 너무 비관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수도자들의 급감 현상은 평신도 형제자매들이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교회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선의와 열정을 지닌 훌륭한 평신도 형제자매들은 분명 우리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런 기회에 사제·수도자들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것입니다. 더 치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온몸과 마음으로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숫자나 외형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내실 있는 사제 생활을 통한 증거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의 삶, 수도자의 삶, 공동체적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줘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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