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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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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말 ‘잊혀진 여인’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여류화가 마리로랑생이 ‘가장 불행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고 말했다는데 영화제목을 혹시 여기서 빌린 건지 모르겠습니다. 관심이 멀어지면 관계가 소원해 지는 게 당연지사일 테고 관계가 소멸되는 건 바로 존재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인간이 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끈 떨어진 뒤웅박 같은 영혼이 되어 곧바로 그 존재양식이 결딴날 건 필연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좀 궤변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언제부턴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드시 교회가 비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무릎 앞을 떠나는 대열이 보입니다. 관심이라는 과제가 턱에 걸려 있습니다. 평균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15%입니다. 교회의 영적 고향집 격인 수도회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비어갑니다. 성탄 때 추리를 장식하고 구유를 만드는 일꾼들이 청년들이 아니고 허리 구부정한 백발 노인들입니다. 주일학교가 축소되고 청년회 방이 텅 빈지 오래입니다. 2024년도 교세통계에 나타난 신자수가 600만으로 한 번도 예외 없이 매년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자 수 통계는 매년 신 영세자수를 기존 숫자에 턱턱 올려놓기만 하는 허구입니다. 하기야 떠난 사람 통계는 명실상부 집계하기가 애매하니 별 수가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만 구미의 교회 상황이나 이를 따라가는 우리의 상황으로 보아 반 토막 난 교세를 두고 ‘죽은 자식 나이 세는(亡子計齒)’격으로 발표하고 있는 형국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래저래 주님께 참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무지한 필자의 소견입니다만 신에 대한 관심, 신앙의 끈을 내려놓는 원인은 그야 두 말 할 거 없이 자본주의 물신사상의 사필귀정이고 인과응보가 아니겠는지요……. 니체를 발원지로 60년대초 발흥한 포스트모더니즘이 급기야 Post truth 시대를 열어 객관적, 일반적, 보편타당성 나아가 도덕률 등의 단어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탈진실로 번역되는 ‘post truth’는 2016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대세로 개인 개성 자유주의 등의 세태가 만연되다보니 간섭은 악의 표상이 되어 관심은 버려야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분간은 도태되고 싫고 좋은 것만 따라 뇌동합니다. 진리와 정의라는 개념은 사장되고 패거리만 남았습니다. 존경이나 경외는 그림자도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곧바로 나 잘나, 1인가구, 이혼, 자식도 안 낳는 세상 등이 되었고 스승이나 위인에 대한 존경도 신에 관한 외경도 엿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급기야 교회는 침묵으로 비껴 서 있거나 일각은 안타깝게도 시정의 흐름에 뒤섞여 있는 게 오늘날 세상 풍경입니다. 세상은 낮과 밤처럼 돌고 돕니다. 그러나 똑같은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지금 조금 비껴 서 있는드시 보일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시 석가래를 고치고 신자대중으로 북적대는 시대가 곧 올것입니다. 오늘날 탈진실시대는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위한 과도기적 수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가되면 주님의 사랑으로 만인의 가슴에 진선미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마음이 되살아나고 자비와 연민이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올 것입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이 말은 교황 요한 바오로2세께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 중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