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송영진 신부님_<참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기쁨이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5-30 ㅣ No.18254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요한 16,20-23ㄱ).”

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에 제자들은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큰 기쁨과 행복’을 얻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모습이 좋은 예입니다.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갈 때에는, 메시아로 믿었던 예수님께서

허망하게 돌아가신 것에 대한 충격과 슬픔과 실망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침통한 표정’이었습니다(루카 24,17).

그랬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마음이 타올라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했습니다(루카 24,32-35).

마음이 타올랐다는 말은,

‘큰 기쁨과 감동’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기쁨’은 ‘새 생명이 태어났을

때의 어머니의 기쁨’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이 출산과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고통을 잊어버린다.” 라는 말씀은, 고통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기쁨이 크다는 뜻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한데,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신앙여정은 고통과 고난과 슬픔의 연속입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도착한 뒤에는, 지상에서 겪었던

고통과 고난과 슬픔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얻어 누리게 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3)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길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수난과 죽음 이야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짧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서 저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

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고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던

때에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이미 ‘부활의 기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은 자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점과 관련해서,

‘기억’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잊어버리면,

‘부활의 기쁨’이 빛을 잃어버립니다.

우리 교회가 해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면서 크게

기뻐하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의

‘큰 슬픔’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천국과 연옥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사는 동안 겪었던 고생을 기억하는 영혼은

하느님 나라가 얼마나 행복한 곳인지를 잘 알겠지만,

만일에 고생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가 얼마나 행복한 곳인지를 모를 것입니다.

사실 고생했던 일의 기억 자체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 덕분에 자신이 받은 은총을 깨닫게 되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되고,

큰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게 됩니다.

연옥에서 보속을 하는 영혼들 경우에,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보속을 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한 일을 전부 다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보속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옥 영혼의 가장 큰 고통은 바로 ‘기억’입니다.

4)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참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그 기쁨은, 하느님 나라에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이들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시작되어서,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목표는 기쁨의 완성”입니다.

묵시록을 보면, 그 기쁨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4).”

하느님 나라는, 슬픔은 없고 기쁨만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 슬퍼하며 울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예수님께서는(마태 5,4), 지금 웃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다음과 같은 경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루카 6,25).”

이 경고는, 하느님을 등지고 살면서, 세속의 쾌락에 빠져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그 웃음은, 선도 사랑도 없는 ‘악마적인 웃음’입니다.>

5)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1코린 13,12ㄴ).

송영진 모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0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