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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평생 화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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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6.부활 제7주간 금요일
사도25,13ㄴ-21 요한21,15-19
평생 화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6월은 예수성심성월이자 호국보훈의 달이요, 오늘은 1956년부터 시작된 올해 제69주년 현충일입니다. 민족과 국가의 수호 및 발전에 기여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되거나 목숨을 바친 분들을 애도하는 날로 법정공휴일이자 국가추념일입니다. 주님을 위한 거룩한 사랑의 순교만 있는게 아니라 나라를 위한 거룩한 죽음의 순국도 있습니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갈 때마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산화(散華)한 군인들의 무수한 묘지를 보면 가슴 짠한 감동을 체험하곤 합니다. 어제 순국의 애국자들을 생각하며 불러본 조지훈 시인 작사의 현충일 노래 가사를 소개합니다. 오늘 한 번 불러보시며 나라 사랑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임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아 그 정성 새로워라”
얼마전 80세 고령에도 영원한 현역으로 손색이 없는 어느 유명한 보수 논객의 인터뷰 내용중 이미 강론에 인용했던 말마디가 요즘도 생생합니다.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사랑하는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라는 말마디입니다. 첫눈에 반한 첫사랑의 추억도 가슴 뛰게 합니다.
여러분은 가슴 뛰는 사랑이 있습니까? 국립묘지에서의 “가슴 짠한 감동의 사랑”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가슴 뛰는 사랑”입니다. “가슴 뛰는 사랑!” 이 최고의 건강비법입니다. 잘먹어서, 운동 많이 해서 건강이 아니라 가슴 뛰는 사랑의 감동이 참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이, 주님 찬미가, 주님 감사가, 주님 희망이, 새로운 만남이, 새로운 발견이, 새로운 배움이, 새로운 깨달음이 가슴 뛰는 기쁨을, 행복을 선사합니다.
이런 가슴 뛰는 기쁨이, 행복이 있을 때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한 청춘의 건강입니다. 저의 경우 첫 사랑은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이었고 지금은 하느님 사랑으로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시절 아이들은 제 사랑의 전부였고, 지금은 하느님이 제 사랑 전부입니다. 지금도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어느 시인의 사랑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리운 분’, 바로 저에게는 주님입니다.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 상본중,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1,21) 라는 바오로 사도의 성구 말씀은 제 좌우명입니다. 행복기도중 다음 고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요즘은 수도원 원내, 성모자상곁의 금계국꽃들이 가슴 뛰는 사랑을 선사합니다. 어제 써놓은 ‘사랑’이란 자작시입니다.
“참 눈부시다 주님인 태양을 반사하니 황금빛 얼굴
성모자상곁 금계국꽃들 주님인 태양을 닮았다 주변이 환하다”<2025.6.5.>
주님의 부르심에 첫눈에 반해 주님을 따라 나선, 주님 사랑에 목숨을 건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 사도가 바로 그러합니다. 베드로와 쌍벽을 이루는 제1독서 사도행전의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극적인 회심후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의 사랑입니다. 오늘 주님과 베드로의 주고 받는 대화도 감동적입니다. 주님은 세 번 거푸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믿는 모든이들에게 평생 화두가 되는 물음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뭐라 대답하겠습니까? 베드로는 부지불식간 세 번 주님을 부인했던 가슴 아팠던 추억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아마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를 각성시키기 위한 주님의 의도적 3회의 물음같습니다. 세 번이나 묻자 세 번째 베드로는 슬퍼하며 대답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대답하며 주님 사랑을 깊이깊이 마음에 각인했을 것입니다. 저라면 “예, 주님을 사랑합니다!” 대답했을 것이나 사연이 깊었던 베드로의 답은 좀 깁니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후 세 번 주님의 당부는 대동소이합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당신의 양들인 형제자매들을 돌보는 사랑에 전력을 다하라는 유언같은 당부입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 역시 형제자매들을 사랑으로 돌보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교의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임을 예고하면서 명령하시니 이 또한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니 베드로는 물론 우리에게 하나의 물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이어 “내 양들을 돌보아라!”와 “나를 따라라!” 두 당부가 뒤따릅니다. 어느 도반이 보내준, 주님을 따르는데 단순한 겸손의 비법을 나눕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틀렸으면 고치면 되고, 고마우면 감사하면 되고, 잘못했으면 사과하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할수록 인생은 가벼워진다.”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 모습에서도 순교자로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림이 감지됩니다. 바오로는 황제에게 상소함으로 예루살렘이 아닌 로마에서의 순교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여러 복잡한 관계와 사건이 중첩되지만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대선교사 바오로를 대제국의 심장부인 로마로 이끄심을 봅니다. 바로 두 말씀의 성취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아마도 바오로는 로마에서 주님을 증언하다 죽는 순교를 예감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은 오늘 우리 삶의 이야기 속에도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오늘도 우리 모두 주님 사랑을 고백하고 형제들을 돌보며, 주님의 손길 따라 자발적 사랑과 기쁨으로 순교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