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4일 (토)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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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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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6-12 ㅣ No.182800

유감(有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앞에 붙이는 말에 따라서 의미가 정해집니다. ‘시대유감(時代有感)’이라고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나를 힘들게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저도 몇 번의 시대유감이 있었습니다. 1980년에는 군사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이 있었습니다. 1997년에는 IMF 경제위기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황사유감(黃砂有感)’이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3년 전에 쓴 글입니다. 23년 전, 저는 황사가 너무 심해서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황사는 마스크를 쓰거나 집에 있으면 피할 수 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황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황사란 바로 우리 마음 안에 가득 찬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노, 욕심과 이기심입니다. 이것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마음의 먼지들입니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는 편견은 마음속의 안개다라고 말했습니다. 안개가 짙게 끼면 길을 잃듯, 마음속의 황사도 우리를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복음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오른손이 죄짓게 하거든 잘라 던져 버려라.” 이것은 문자 그대로 눈을 빼거나 손을 자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흐리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흐리게 하는 내면의 황사 즉 죄의 뿌리를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 안토니오 성인의 생애에도 이를 잘 보여 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젊은 청년이 고해성사 후에도 죄의 유혹을 끊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성인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자꾸 죄를 짓는 손이 너무나도 싫습니다. 차라리 이 손을 자르고 싶습니다.” 그러자 안토니오 성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손이 너를 죄짓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손을 움직이게 하는 마음이 죄를 지은 것이다. 손을 자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네 마음을 하느님께 돌이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청년의 손을 붙잡고 뜨겁게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청년은 마음의 황사를 걷어내고 회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깨어지기 쉬운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보물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질그릇이 황사로 가득 덮이면, 보물은 빛을 잃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개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사막에 단비가 내려 황사를 씻어내듯이, 성령의 바람이 우리의 영혼을 정화해야 합니다. 성 안토니오 성인도 그러한 회개의 강론으로 수많은 영혼을 하느님께 이끌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말 잘하는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에는 진실한 사랑과 회개의 불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 안에도 이 진실한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고, 우리 주위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우리의 사랑이 있어야 하는 이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마음 안에 황사는 없는지요? 혹시 질투나 편견, 분노나 이기심이 성령의 햇살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렇다면 오늘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처럼 회개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마음을 다시 정화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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