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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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영적자산 이야기, 우리가 모르는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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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5-07-08 ㅣ No.183321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원래 질문은 교만에 관한 게 아닌데 중간에 설명하시는 중에 의아한 부분이 있어 잠시 설명을 들었는데 중요한 내용이고 또 흔히 잘못 이해할 소지가 다분히 높은 것 같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교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뜻과 느낌 말입니다. 이것도 깊이 들어가면 교만이라는 걸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기는 겸손한 것이라고 그것도 그게 진실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했는데 실제는 그게 겸손이 아니고 도리어 교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사실 보통의 일반 신앙인에게는 잘 식별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하십니다. 

 

수녀님께서 시간 관계상 하나만 비유로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어떤 관계에서 상대방보다 물리적으로 무조건 낮은 자세를 취하고 상대를 상대적으로 높여드리는 게 일단 어떤 행위의 외관만 봤을 땐 분명히 겸손한 모습을 취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떤 경우에는 겸손으로 될 수 있지만 실제 우리는 그런 외형보다도 그런 자세를 취할 때 그 마음 자세가 일단 어떤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적 동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실제 마음도 상대를 자기보다 낫게 생각해서 예를 다해야겠다고 생각해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한다면 그런 모습은 겸손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외형도 외형이지만 남들에게 실제는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어느 정도 우러러 보는 경향이 있고 원래 사람이라는 건 본능적으로도 남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와 같은 의도에서 했다면 실제 선행 행위는 겸손처럼 행동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후행 행위의 결과 속에는 오히려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숨은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고 합니다. 이때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 사실이 아주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선의로 했든, 선의로 하지 않았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일반 사람들이 가장 잘 착각하고 잘못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의도가 좋지 않다면 결과에 따라서도 좌우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결과도 결과지만 실제로는 그런 의도를 가지게 된 동기를 더 중요시 하려고 하는 성향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인식의 차이로 인해 우리는 교만을 때로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겸손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순수하게 했는데 결과는 그게 교만이었다는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마 그 당사자는 놀랄 것입니다. 수녀님은 예를 들지는 않으셨는데 수녀님의 말씀에 조금 더 잘 이해가 되실 수 있을 것 같아 제가 아주 좋은 비유 하나를 부연하겠습니다. 

 

이건 세상 법리를 설명할 때 인용되는 예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불순한 의도로 홧김에 그냥 남의집 창문에 돌을 던져 창문을 깨뜨렸습니다. 그럼 일단 외형적으로는 손괴죄에 해당됩니다. 근데 마침 그때 그집에 있는 사람은 연탄가스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때 그 창문이 깨지는 바람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했을 때 돌을 던진 사람이 만약 그 안에 어떤 사람이 지금 가스에 중독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생명을 구하려는 뜻에서 돌을 던져 창문을 깼다고 했을 땐 형법상 손괴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과는 창문이 깨지는 거였지만 그 본래의 동기 즉, 형법에서는 고의라고 하지만 이때 고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 종합하여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겸손이라는 걸 인식할 때도 단순히 어떤 외형적인 행동이나 아니면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하는 내적동기 이런 것도 다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숲을 보듯이 보고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그냥 어떤 한 단면만 보고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한번 재고해보게 된다면 신앙에서 우리가 놓치고 갈 수 있는 부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딱 정확하게 수학공식처럼 획일적으로 교만의 정의를 내리는 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그냥 생각해서 '이게 교만이다. 아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건 지양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마지막 이 부분은 저의 사견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더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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