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 주간 수요일 “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마태 10.6)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치유와 회복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집안'은 단순히 민족적 경계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길을 잃은 모든 존재를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복음 선포가 ‘멀리’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거창한 꿈도, 결국 내 곁에 있는,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품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내 안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영성 신학에서 말하는 '내적 통합'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집안의 잃어버린 양’은 나 자신 안에 있는, 외면받고 잊힌 나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내가 미뤄둔 슬픔, 인정받지 못한 소망, 치유받지 못한 상처— 이 모든 것이 내 안의 잃어버린 양입니다. 토마스 머튼 신부님이 말했듯이,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전까지는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참된 변화와 회복은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내 안의 연약함과 아픔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품어주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문득 밀려온 불안, 사소한 실패에 움츠러든 마음을 그냥 외면하지 않고 “괜찮아, 이런 마음도 나야”라고 다정하게 인정해 주는 것— 이런 작은 자기 돌봄이 내 안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첫걸음입니다. 공동체의 회복, 내 곁에서부터 신앙과 사랑의 회복은 먼 곳의 누군가가 아니라, 내 가족, 내 친구, 내 공동체— 즉 내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잘 알기에 더 무심해질 수 있는 이들, 오래된 오해와 상처로 거리가 생긴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 이것이 진짜 복음의 시작입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제 내가 짜증을 냈던 가족에게 먼저 "미안하다" 말하기, 연락이 뜸해진 친구에게 안부 묻는 메시지 보내기, 직장에서 소외된 동료에게 점심 함께 먹자고 제안하기, 이런 작은 실천들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내 삶 안으로 불러오는 길입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 고을로 ‘먼저’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결코 배제나 거부가 아니라, 내 곁의 상처와 단절에서부터 치유와 사랑을 시작하라는 초대입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사랑의 작은 파동이 동심원처럼 내 곁에서, 그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조용히 번져 나갑니다. 큰일,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SNS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옆집 할머니께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더 복음적일 수 있습니다. 내 안과 내 곁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작은 실천이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첫걸음이 됩니다. 지금, 여기서 회복은 시작된다 그래서 복음의 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부터 열립니다. 내가 돌아봐 주지 못했던 내 안의 한 부분, 멀게만 느껴졌던 가족이나 이웃, 공동체 안의 소외된 존재들을 다시 찾아 품을 때— 그곳에서부터 회복과 치유의 새날이 시작됩니다. 가장 가까운 곳, 내 안과 내 곁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고, 그 존재를 다시 품어주는 작은 용기— 그 작고 평범한 실천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내 삶에 시작되는 첫걸음입니다. 주님, 저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먼저 보내주심에 감사합니다. 멀리, 더 위대한 일을 해야만 한다고 제 자신을 몰아세웠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저 자신의 상처와 아픔도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 안을 수 있게 하소서. 내 곁에 너무 가까워서 놓쳤던 소중한 이들을 다시 발견하는 눈을 주소서. 오늘 이 작은 실천이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랑임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