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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하느님의 종 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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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의 시복 추진에 관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3월 12일, 사도좌를 방문한 한국 주교들에게, “‘한국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교회의 성사생활로 온전히 나타내기 전부터 이미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첫 제자들처럼 신앙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2014년 8월 14일, 방한 중 한국 주교들에게 하신 말씀 속에서도, “그들은 평신도였고, 그들 스스로 개척해 나갔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만나 시작되었다는 것은 뜻이 깊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는 아름다움과 진실성이 있어서, 복음과 복음의 요구, 곧 회개, 내적 쇄신,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가 ‘이벽과 첫 세대 양반 원로’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그 순수함에,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일어나 비추어라」, CBCK, 2015, 21.) 이러한 표현은 서양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평신도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직접 하느님 나라의 진리에 도달한 천진암강학을 황사영이 잘 알고 있었고, 이에 교황도 이 내용을 인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사학계의 대선배인 주재용 신부는 부단한 연구 결과 『한국 가톨릭사의 옹위』 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 창립선조들에 대한 진실을 밝혔고, 후학들에게도 진실에 다가가는 노력을 당부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창립선조들인 이벽, 권일신, 권철신, 이승훈, 정약종의 묘를 관리하고 있는 천진암성지에서는, 지난 1979년부터 창립선조들의 시복시성 추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위원회와 관할권이 바뀌면서, 실로 많은 반대와 방해와 오해와 수난의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이는 창립선조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연구가 부족하여 이분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또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는 박해시대를 거치면서, 자료들이 유실되고 또 많이 훼손 되었으므로, 자료 수집과 분석, 그리고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한국천주교회는 남한강가에 살던 남인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중국 예수회 신부들의 책을 구해 공부하면서 시작되었고, 또한 이들은 통혼관계로 아주 가까운 집안들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해(1791)박해 당시 충청감사를 지낸 박종악은 이들의 학문을 ‘남인의 학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백서』 11행에 보면, ‘권철신은 남인<즉 동인> 대가의 자손(權哲身者 南人<卽東人>大家之裔)’이라고 하였고, 그 뿌리가 동인이었던 북인들과도 통혼권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보』 497과 498만 펼쳐보아도 이세박(李世璞은 권상술과 한석기[이벽의 외4촌]의 장인)과 이세관(李世瓘은 남상교[학자원 『북보』 171]의 장인)의 폭넓은 혈연관계를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남보』 106의 이용휴(李用休는 이가환의 父)의 딸들과 결혼한 사람들은 이동욱, 이응훈(李應薰은 이학규의 父), 신희연과 북인 정철조가 보입니다. ‘황금의 보배로움은 산지가 어디인가에 달려있지 않듯이’ 북인들은 오직 진리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위한 열정으로 북학파와도 교류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족보 속에 이름과 더불어 겨우 남아있는 연결고리를 찾고자, 필자는 항상 이들의 족보들(남보와 학자원 북보)을 옆에 끼고 살며 수시로 열어본 결과, 이들의 처절한 신앙고백의 역사는 끊임없이 대물림되었고, 권철신의 증손자들이 선대의 신앙을 ‘우리가문의 학문(謂以家庭之學)’ 이라고 일컫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확한 사실에 입각하여 자료들을 면밀히 분석, 연구한 결과가 이제 여기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 창립선조 순교자들은 자신이 신앙하는 바를 난관 속에서도 남들에게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도직(敎導職)을 수행하였고, 신자 공동체를 결성하여 이끌어가는 치교직(治敎職)을 수행함으로써, 우리 신자들의 의지가 되고 중심이 되던, 교회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천주교회 ‘제1세대 평신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in odio fidei) 모두 생명까지 바친 거룩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이에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4위’의 약전을, 수원교구의 ‘하느님의 종’ 43위와 합하여,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라는 제목으로 2022년에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에서 먼저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창립선조 4위’는 수원교구만의 순교자가 아니라, 한국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은 분들로서 전국적으로 알릴 필요성이 있기에, 별도로 ‘창립선조 4위’만의 단행본을 만들어, 특별히 연구자들을 위한 각주본을, 수원 교구장님의 배려로 이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5년 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사 연구에 기초가 되는 중국 예수회의 원자료들인 한문본 천주교 문헌 등을,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과 ‘트리엔트 교리서’의 사유 체계 아래에서, 빅 데이터 분석 기반의 고유한 연구 방법을 사용하여, 발굴, 수집, 분석하여,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되는, 이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4위’ 약전에서도 많이 인용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필자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해 온, 평신도 교수 소순태 마태오(Ph.D.)님께 이 자리를 빌려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소순태 교수는 태중교우로서 우리나라의 가톨릭 신앙 정립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바, 그 활동의 대략은 아래와 같습니다. ➊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4위’ 약전의 공동저자인 소순태 교수는 2005년부터 수원교구 분당요한 성당에서, 영어성경 공부반(주일성경 해설집 6권 출판과 ‘문답’에서 주일/대축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제공 중)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수는 앞서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Ph.D., 1992년)(세부전공: 대수기하학)를 받았습니다. 귀국하여 명지대학교에서 26년 이상 재직하며, 수리계산연구센터장으로서, 적정 규모의 인터넷 기반 연구/교육용 슈퍼컴퓨터(SGI Origin 3400) 의 선정, 설치, 시스템 관리 및 운영을 20년간 수행하였고, 2022년 2월에 명지대학교를 정년퇴임과 함께 명예교수로 임명되어 연구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➋ 독학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섭렵하였고, 지금은 필자인 김학렬 신부가 보기에, 한국의 신학대전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➌ 2015년 봄부터 도움을 청하는 김학렬에게 중국 예수회 신부들의 저술인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의 원문을 찾아, 제공함으로써, ‘창립선조 4위’ 약전 서술의 출처들을 제공, 확증하였습니다. 특히 이벽 성조가 우리나라에 대세(代洗)를 최초로 도입하여 보급하였음을 밝혔고, 이승훈의 의방성직제도(依倣聖職制度)의 근원도 밝혔으며, 그리고 ‘성교요지(聖敎要旨)’가 중국 혹은 일본에서 작문될 수 없음 및 이벽 성조의 작품임을 실증적으로 입증/고증하였습니다. ➍ 소순태 교수의 ‘English daily Mass listenings’ 홈과 중국 예수회 문헌 홈 페이지를 연구자와 독자들도 모두 사용 중인 PC/노트북의 ‘즐겨찾기’에 추가하여 공부에 활용하기를 바랍니다. 2024년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4월 8일), 김학렬 若望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5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