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1일 (목)
(백)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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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무지는 재앙의 근원 “예수님처럼, 지혜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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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08:09 ㅣ No.184308

2025.8.21.목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 기념일 

 

 

판관11,29-39ㄱ 마태22,1-14

 

 

무지는 재앙의 근원

“예수님처럼, 지혜롭고 자비로워라”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무지의 어둠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주 예전 개나리란 짧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이 또한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시입니다.

 

“겨울 지낸 

 개나리

 햇빛 환한 봄날도

 너무 어둬

 

 샛노란 꽃 초롱들

 가득 켜 들고

 대낮의 어둠

 환히 밝히고 있다”<2001.4.1.>

 

‘대낮의 어둠’이 지칭하는 바 무지의 어둠이요, ‘개나리 샛노란 꽃초롱들’이 지칭하는 바 깨어 있는 지혜와 자비의 영혼들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오늘 옛 현자의 말씀입니다.

 

“선비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늦게 밥상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다산>

“매일 내리는 선택들이 모두 나를 만드는 나의 역사가 된다.”<다산>

삶도 행복도 선택입니다. 날마다 좋은 선택에 훈련을 통한 습관화가 지혜로운 삶의 첩경입니다.

“삶도 내가 바라는 것이고 의(義)도 내가 바라는 것이지만, 이 둘을 함께 취할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한다.”<맹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때 삶과 의가 일치된 삶이겠습니다.

 

어제 gallery Lamer 1층2관에서 2025,8,20-8.25까지 “사랑을 노래하라(sing of long)”는 주제로 열리는 민경숙 루시아 자매의 “그림 전시회” 에 참석했고 많은 그림들을 감상했습니다. 말그대로 무지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신망애 가득한 그림들이었습니다. 마음은 정화되어 고요하고 평온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외면의 모습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시적인 분위기에, 참석한 분들 대부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가들이기에 나이에 무관하게 꽃처럼, 시처럼, 그림처럼 예뻤고 전시회의 살아 있는 작품들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평생 하느님의 사랑과 아름다움을 찬미와 감사로 노래한 수도승 신분의 저이기에 느낌 또한 각별했습니다. 저절로 터져 나온 내심의 찬탄이었습니다.

 

“참 밝고 힘차고 시원하다!”

 

푸르른 하늘과 푸르른 바다를 배경한 그림들이, 자연속의 구름, 바람, 바다속의 돌고래, 갖가지 사랑의 피조물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힘차게 희망차게 노래하는 듯 했습니다. 마음속 무지의 어둠이 다 걷히듯 빛으로 가득한 전시작품 그림들이었습니다.

 

무지의 어둠을 환히 밝혀주는,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오늘 말씀들입니다. 역시 오늘 복음은 어제에 이어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롭고 자비로운 예수님뿐이요 이렇게 살 때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의 초대를 갖가지 사유로 핑계 대며 초대를 거부한 이들, 한 술 더 떠 잔치에 오라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인 이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참 좋은 구원의 은총이자 선택을 물리쳤고 크나 큰 불행을 자초합니다. 참으로 무지의 어둠 속에 분별력을 잊은 사람들입니다. 

 

이어 예상에 없던 이들이 임금의 특은으로 하늘 나라 잔치를 상징하는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만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세례받아 하늘 나라 잔치 미사전례에 참석했다 하여 저절로 구원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선물이자 평생 숙제입니다. 불림 받은 성소의 선물이 평생 최선의 노력을 다한 숙제의 응답이 뒤따라야 합니다. 바로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아 잔치에서 쫓겨난 무지의 어리석은 이가 이를 상징합니다. 복음사가의 언급은 그대로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삶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출발선상에서 불림 받은 성소자들은 많았지만 도중하차 하면 다 헛된 일입니다. 끝까지 항구히 한결같이 책임을 다하는 정신으로, 우보천리의 자세로 골인 지점까지 뛰어야 구원입니다. 결코 값싼 구원은, 값싼 은총은, 값싼 영적승리는 없습니다.

 

무지의 어리석음의 절정은 판관기에 나오는 눈먼 열심의 판관 입다입니다. 그가 정녕 성서에, 하느님 마음에 정통해 있던 지혜와 자비의 사람이라면 자기 딸을 인신공양하기로 주님께 약속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후에라도 주님과의 약속을 깨더라도 철회해야 했으며 이것이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 이래서 성서의 가르침은 하느님께 약속이나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서의 율법은 인신공양을 금하며 바로 이런 모습의 좋은 예가 이사악을 살려낸 하느님에게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하느님의 개입사건을 통해 아브라함도 하느님 자비의 마음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인신공양은 가나안 사람들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에 들어왔던 것으로 곧장 폐기되어야 마땅했습니다. 

 

판관 입다의 어리석고 믿은없는 무지의 약속으로 그날의 영적승리의 기쁨은 무죄한 딸을 인신공양하는 비극의 슬픔으로 바뀌니 무지의 약속이나 착각이, 맹신이나 광신이 얼마나 치명적 불행을 자초하는지 깨닫습니다. 새삼 자비심과 더불어 분별력의 지혜가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데 얼마나 결정적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은 제257대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성인들입니다. 꽃마다 색깔, 크기, 모양, 향기가 다 다르듯 성인들도 그러합니다. 어제의 성 베르나르도와 오늘의 비오 10세 너무나 다릅니다. 공통점은 단 하나 하느님께 대한 사랑,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사랑, 교회에 대한 사랑입니다.

 

성 비오 10세의 우편 배달부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 10남매중 둘째였습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의 사목표어는 “만물을 그리스도 언에서”(에페1,10)였고, 스스로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가난을 사랑했고, 한결같이 단순하고 선한 마음으로 살았으며 생전에도 신자들에게 성인으로 존경받았습니다. 교황은 성체를 자주 영하도록 권장했으니 그전에는 한달에 두 변정도, 많은 이들이 대축일 때에만 영성체를 했습니다. 첫 영성체 나이도 12세에서 7세로 낮춤으로 “성체의 교황”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교황은 교황청 구조를 개편하고 전례를 개혁하며 교회법 편찬을 지지하는등 현대교회의 초석을 쌓았습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비오 10세의 특징을 “설명의 간결함과 내용의 심오함”이라고 평했습니다. 전임자 레오13세 때에 불었던 자유주의 바람은 비오 10세에 교황 때에 많이 사그러들었기 때문에, 비오10세의 치세는 반동의 시기로 평가받습니다. 당신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신학자들은 집필금지 처분을 받았고 금서목록에도 오르게 됩니다. 

 

이런 행적, 성향으로 인해, 비오10세는 약 반세기 후에 즉위하는 근대주의자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개방과 탈권위의 아이콘으로 대변되는 요한23세와는 대척점에 서는, 20세기 가톨릭 역사에서 전통주의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림매김합니다. 새삼 시대의 요구에 충실히 응답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리듬속에 전개되는 교회 역사 역시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서서히 걷히는 무지의 어둠임을 깨닫습니다.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지 22만인 1914년 8월20일 선종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수많은 이들이 전쟁속에 생명을 잃는 모습에 개탄하면서 대전을 막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뇌졸중으로 선종하니 일종의 순교적 선종입니다. 이어 1951년에 복자품에, 1954년 비오12세에 의해 시성됩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혔던 시대의 성인들이요 성 비오 10세 교황도 그러합니다. 어제 삼종기도후 “아무리 가장 어둔 순간에도, 사랑하고 용서하기에 결코 늦지 않다.”라는 레오14세 교황말씀도 무지의 어둠을 밝힙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안팎의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시어 빛의 나라, 하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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