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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현양 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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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절에 다니던 시어머니가 착한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며느리는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시부모님에게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며느리는 할머니에게 성당에 같이 다니자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며느리를 위해서 기꺼이 성당에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다녀온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성당에 안 가련다. 절의 부처님은 풍채도 좋고, 황금색으로 멋진데, 성당의 예수님은 삐쩍 마르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잖니. 어째 성당의 예수님은 그리 불쌍해 보이니.”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대부분 종교의 창시자들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종교의 창시자를 십자가에 높이 매달은 모습으로 믿는 종교도 없습니다. 비록 문제가 있더라도 더 멋진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왜 가톨릭교회는 십자가에 달린, 가시관의 예수님을 믿을까요? 문병란 시인은 ‘희망가’라는 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한고비 지나면 구름 위 태양은 다시 뜨고/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인생 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시련과 좌절의 표상인 십자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첨탑에는 십자가가 있고, 성당의 제단 뒤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면서 하느님께 이렇게 청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괴로웠지만 행복했던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오늘 교회는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냅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형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십자가는 구원과 부활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미사의 정점인 성찬의 전례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신앙의 신비여!” 교우들은 사제의 선포에 이렇게 응답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며 부활을 굳게 믿나이다.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영원히 경배받으소서.” 십자가의 길 기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정점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씨 뿌리지 않고 열매 맺으려는 욕심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사막의 신기루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과 형벌의 도구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십자가의 수직면은 하느님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수평면은 사람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사람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갈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해야 할 일을 알았고, 최선을 다했던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은 예배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렸습니다./ 첨탑이 저리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드러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