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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믿음의 여정 “믿어라, 기다리라, 은사를 불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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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5.연중 제27주일
하바1,2-3;2.2-4 2티모1,6-8.13-14 루카17,5-10
믿음의 여정 “믿어라, 기다리라, 은사를 불태우라, 섬겨라”
새벽 바티칸 교황님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영문 글짜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선한 충격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To Hope is to Choose”, “희망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교황님 말씀입니다.
“우리는 정의냐 불의냐, 하느님이냐 돈이냐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을 거부하는 자들은 절망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희망뿐 아니라 잘 선택해야 할 것은 끝이 없습니다. 믿음도 선택이고 사랑도 선택이고 감사도 선택이고 평화도 선택입니다. 삶에서 선택해야 할 것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선택에 이어 반드시 훈련과 습관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여기 수도자들은 믿음을 선택하여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공동전례를 통해 믿음을 훈련하고 습관화합니다.
오늘 수도원 미사에 참석하신 분들은 참 좋은, 기막힌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선택이 믿음입니다. 불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인간품위의 우선순위로 첫째는 하느님 믿음, 둘째는 건강, 셋째는 돈’이라 강조해왔습니다. 절대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도 안되고 첫째 번 하느님 믿음이 빠져선 더욱더 안됩니다.
참으로 인간품위의 첫째가 하느님 믿음입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능력은, 깊이는 다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갑니다. 과연 내 믿음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겠는지요. 정말 노화와 더불어 체력은 쇠퇴해도 반대로 믿음의 힘, 신력은 날로 좋아지는 믿음의 여정이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여정,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믿음의 여정을 살아갑니다. 과연 날로 둥글둥글 원숙하게 익어가는 믿음의 열매들인지요? 성공적 믿음의 여정을 위한 방법을 나눕니다.
첫째. “믿어라!”입니다. 믿음도 훈련입니다. 진짜 힘은 믿음의 힘입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의 힘입니다. 오늘 사도들은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합니다. 믿음은 선택이자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청할바 믿음을 더하야 달라는 청원 하나뿐이겠습니다.
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고통의 시련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와 더불어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 믿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은 우리의 노력인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위력을 강조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믿음의 힘은 바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하느님께서 감동하여 응답하실 때 믿음의 기적입니다. 이런 믿음의 삶보다 이웃에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믿음도 보고 배웁니다. 눈만 열리면 믿음의 스승들입니다. 부모의 믿음을, 수도선배들이나 이웃 형제자매들의 믿음을 보고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기다려라!”입니다. 기다림도 훈련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 인내의 믿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의 닻을 내리고 있을 때, 하느님을 믿을 때 기다릴수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이, 설레임이 끝없는 기다림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코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변절, 변심, 변덕이 없습니다. 조용히 하느님 중심에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요지부동 흔들리지도 않고 부평초처럼 방황하거나 표류하지 않습니다. 하바꾹 예언자의 진솔한 고백 기도에 공감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당신께서 구해 주지 않으시는데, 어찌하여, 어찌하여” 탄식과 원망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이 또한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입니다. 믿음 부족의 반영을 뜻하는 기도이지만 애당초 타고난 좋은 믿음은 없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기도를 바치면 됩니다. 주님의 응답에 깊어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 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보라, 뻔뻔한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우리가 목표할바 이런 의인의 한결같은 믿음의 기다림이자 성실함입니다. 의인은 진실하고 성실하고 절실한 삶을 살아갑니다. 바로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정주의 믿음이, 인내의 믿음이 목표하는 바 이런 의인의 삶입니다.
셋째, “불태우라!”입니다. 무엇을 불태웁니까? 하느님께 저마다 받은 은사를 불태우는 믿음입니다. 받은 은사와 책임을 다하며 불태우는 삶은 그대로 은총으로 빛나는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한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바로 주님의 미사은총의 선물이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입니다. 바로 이런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이 비겁하지 않고 용기있게 삶을 직면하게 합니다. 주님을 위해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게 합니다. 우리 안에 머무르는 성령의 도움이 우리가 맡은 훌륭한 것을 지켜내며 내 지닌 은사를 불태우며 살게 합니다.
넷째, “섬겨라!”입니다. 섬김도 훈련입니다. 오늘 복음의 종의 처지 비유가 참 기막히게 좋습니다. 우리 영성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무한한 사랑을 빚지고 살아가는 주님의 종입니다. 배수확에서 보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햇빛과 공기, 물, 땅을 공짜로 주셨기에 이렇게 좋은 농사를 질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사랑의 빚을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깨끗이 잘 관리하고 돌보아야 할 공동의 집인 지구를 너무 함부로 막 대합니다.
정말 주님의 무한한 사랑의 은혜에 빚지고 사는 종의 처지를 안다면 감사의 표현인 겸손한 섬김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입니다. 우리가 평생 화두로 삼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영성의 절정이자 겸손한 믿음의 절정입니다. 살아 있음 자체가 찬미와 감사요 행복과 기쁨이요 사랑의 구원입니다. 이런 삶의 자세라면 절망도 원망도 실망도 있을 수 없고 감사와 감동, 감탄만이 있을 뿐입니다. 정말 하느님의 마음 깊이까지 도달했기에 쓸모없는 종이라는 자의식입니다.
자기 분수를 아는, 참으로 자유롭고 자연스런 주님의 종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과 섬김의 영성>뿐이요, 이런 쓸모없는 종이라는 자의식의 감사와 겸손의 삶이라면 공동체의 평화는 저절로 이뤄질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믿음의 훈련에 항구하게 하시고, 감사와 겸손의 섬김의 종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