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4일 (금)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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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더불어 성화의 여정 “사랑의 불, 참평화, 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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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10-23 ㅣ No.185778

 2025.10.23.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로마6,19-23 

루카12,49-53

 

 

더불어 성화의 여정

“사랑의 불, 참평화, 참일치”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시편1,2-3)

 

계속되는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자 수확의 계절이요 공부의 계절입니다. 10월 묵주기도성월에 이어 11월 위령성월이 끝나면 곧 겨울이요 1년의 끝입니다. 우리 인생의 사계도 그러합니다. 새삼 영성의 열매들 잘 익어가는 <성화의 여정>인지 그냥 속절없이 늙어가는 <노화의 여정>인지 살펴보게 합니다. 예전 참 좋은 인사법이라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성화되십시오!”

흡사 불자들의 인사법과 흡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거룩한 성인이 되라는 인사, 부처님이 되라는 인사 말마디 얼마나 멋지고 긍정적인지요! 사람 누구나에게 성인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고, 성화의 여정을 통해 성인이 되는 것 우리 인생의 궁극의 목표입니다. 과연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여정인지 뒤돌아보게 합니다. 

 

주님 앞에 갔을 때도 주님을 닮았는지 얼굴부터 검사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갈수록 참나의 얼굴이 됩니다. 베네딕도 규칙서 말씀도 우리가 성인이 될 것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성인으로 불리우리기를 바라지 말고, 참으로 성인으로 불리어지도록 먼저 성인이 되라.”<성규4;62>

 

성화의 여정에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말들이 행동에 앞섬을 경계합니다.

 

“말이 많아지면 어느새 쌓인 말들이 행동을 앞서게 된다.”<다산>

“말이 많아지면 궁해지니 차라리 속을 비워 지키느니만 못하다.<도덕경>

 

침묵에 관한 성 베네딕도의 생각도 아주 단호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좋고, 거룩하고, 건설적인 담화일지라도 침묵의 중대성 때문에 완전한 제자들에게 말할 허락을 드물게 줄 것이다...젊잔치 못한 희롱이나, 한가한 말이나, 웃기는 말은 어느 곳에서나 절대로 금하며 단죄하고, 또 이러한 담화를 위해 제자들이 입을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성규6;3,8>

 

사실 세월흘러 나이들어 갈수록 할말은 많아지는데 결코 해서는 안되는 담아둬야 할 말들이 대부분 같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성화의 여정을 사는 자라면 침묵과 말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 착안한 성화의 여정이요 사도의 권고가 참 적절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전에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에 종으로 넘겨 불법에 빠져 있었듯이, 이제는 자기 지체를 의로움에 종으로 바쳐 성화에 이르십시오. 죄의 종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단숨에 익혀지는 사도의 은혜로운 말씀이 성화의 여정중인 우리의 용기를 붇돋아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친히 성화의 여정중이 우리에게 구체적 지침 둘을 주십니다.

 

첫째, 주님의 불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불이 되어 살 때 밝고 따뜻한 삶이요 불이 꺼지거나 약하면 춥고 어두운 삶이 됩니다. 그러니 주님 사랑의 불, 성령의 불, 말씀의 불에 불붙어 우리 자신은 물론 주변 세상을 밝히는, 결코 꺼지지 않는 주님의 불로, 주님의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이 녹아 있는, 고뇌가 가득 담긴 고백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주님은 세례의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당신 사랑의 불로, 말씀의 불로, 성령의 불로 타오르기를 갈망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우리 공동체는 주님의 사랑의 불, 말씀의 불, 성령의 불에 타오르는 주님의 불입니까? 혹시 꺼져가는 불은 아닙니까?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끊임없이, 한결같이 사랑의 열과 빛을 내며 타오르는 주님의 불이 되어 살게 합니다.

 

둘째, 주님의 참평화와 참일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참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주님의 참평화와 참일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것은 교회의 박해시기 실존적 생생한 체험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결코 값싼 평화나 거짓평화, 가짜평화가 아니라 참평화입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거짓 평화를 주지 말라”(성규4;25) 말씀하십니다. 

 

분열과 불화의 표면적 현실에 일희일비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참희망이자 참평화이신 주님을 살자는 것입니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어둔 세상중에도 주님의 참평화의 사도가 되어 살자는 것입니다. 역시 주님의 임재와 더불어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선과 악, 참과 거짓의 분열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역시 참평화와 참일치에 이르는, 파괴적이 아닌 창조적 분열이자 잠정적 과정적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참평화이자 참일치의 근원인 주님께 희망을 두고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뎌내며 주님의 참평화를 사시기 바랍니다. 공동체 내에서 서로 맞서는 분열의 현실도 참평화이신 주님의 은총으로 서서히 치유될 것입니다. 외적 분열의 현실중에도 결코 참평화를 잃지 않도록, 주님의 평화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미사때 마다 ‘주님께 평화를 주십사’ 기도하기 보다는 ‘주님의 평화가 되어 살게 해주십사’ 기도하면 좋을 것입니다. 

 

혼자의 여정이 아니라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합니다. 그러니 혼자가 아닌 더불어 성화의 여정입니다. 외적 불화와 분열의 현실에 변덕스러이 흔들리지 않고, 순교자적 열정의 지극한 인내의 정주로 한결같이, 주님과 함께, 형제들과 함께 평화의 여정에, 일치의 여정에 충실할 때 더불어 성화의 여정도 날로 깊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참평화와 참일치의 여정의 삶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 우리 모두 주님과 하나될 때 우리 역시 주님의 희망이, 주님의 평화가 되어 살 수 있게 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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