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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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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주님과 만남, 치유와 구원의 여정 “하느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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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10-27 ㅣ No.185861

2025.10.27.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로마8,12-17 루카13,10-17

 

 

주님과 만남, 치유와 구원의 여정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 삽시다”

 

 

"주님은 날마다 찬미받으소서.

 우리 짐을 지시는 하느님은 우리 구원이시다."(시편68,20)

 

길과 진리를 찾는 사람입니다. 생명과 빛을 찾는 사람입니다. 희망과 꿈을 찾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정의입니다. 길과 진리를, 생명과 빛을, 희망과 꿈을 찾아 살 때 비로소 영육의 건강입니다. 이들을 잃어 버리고 방황할 때 따라오는 온갖 죄와 질병들입니다. 바로 이 모두에 대한 답이 주님입니다. 주님은 길이자 진리이고, 생명이자 빛이요, 희망이자 꿈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과 만남의 여정을 살아가야 영육으로 건강한 삶입니다. 한두번 만남이 아니라 평생 살아 있는 그날까지 날마다 새롭게 만나야 할 주님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가 됩니다. 도대체 주님을 대체할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때 이들은 우상이 될 것이고, 주님께서 이 자리에 부재할 때 악령의 거처가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영육으로 건강한 삶은 삶의 중심에 주님을 모신 삶이요 날마다 주님과 새롭게 만나는 삶입니다. 인간의 모든 어려움은 주님을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등 굽은 곱사등이 부인을 안식일에 고치시는 장면입니다. 무려 열여덟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렸으니 그 말못할 고통은 참으로 컸을 것이나 이 부인은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봅니다. 아니 치유받고자 하는 열망은 여전했고 주님께 포착됐음이 분명합니다. 다음 대목이 흡사 살아있는 그림을 연상케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하시고, 그 여자의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 대목에 모든 답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해방자임을 깨닫습니다. 등굽은 곱사등이 부인이 상징하는바 우리 인간 모두들입니다. 이 곱사등이 부인이 회당 전례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결코 주님과의 만남은 물로 치유의 구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대로 주님과의 만남인 이 거룩한 미사전례 장면을 압축한 듯 합니다.

 

어찌보면 정도의 차이일뿐 우리 모두는 무수한 근심 걱정의 짐으로, 불안 두려움의 짐으로, 갖가지 병고의 짐으로, 참으로 무거운 짐으로 인해 심리적으로는 등굽은 곱사등이 일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과 더불어 치유의 구원이 이루어지자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건강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장면은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세상짐이나 병고의 짐이 무겁더라도 이에 짓눌려 등굽은 곱사등이 삶을 살 것이 아니라, 곧장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파스카의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전례중 모두 <마음의 굽은 등을 활짝 펴고 하느님을 찬양할 때 치유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안식일의 치유에 항의하는 회당장은 문제의 절박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다음 예수님의 언행을 통해 그대로 하느님 마음이, 사랑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참 통쾌합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아주 기본적 상식에 호소하여 설득해야 할 정도로 이들이 사고가 경직됐음을 봅니다. 예수님께 주님의 날인 안식일은 구원의 날 그자체이기에 안식일의 취지에도 그대로 드러맞습니다. 적대자들은 망신을 당하였지만 소박한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했다니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음을 봅니다.

 

유비무환이 제일의 지혜이지만 치유의 구원이후의 조치도 중요합니다. 바오로의 권고대로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때 저절로 치유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공동상속자가 됩니다. 천상에서 펼쳐질 하느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의 충만한 행복을 물려 받을 공동상속자들인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은총으로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 사는 우리들이요, 황홀한 상속의 행복을 앞당겨 맛보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 주 하느님께 있네."(시편68,21).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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