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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믿음’은 곧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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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앞서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루카 18,35-43).” 1) ‘어떤 눈먼 이’의 이름은 ‘바르티매오’입니다(마르 10,46).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예수님을 따랐다.’ 라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눈먼 이가 예수님 덕분에 눈을 고쳤다는 단순한 치유 이야기가 아니라, 암흑 속에서 살던 사람이 ‘빛이신 주님’을 만나서 ‘생명의 빛’을 얻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르게 되었다는 ‘구원 이야기’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2)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는 말은, 마태오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눈이 멀어서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면서 먹고사는 바르티매오의 인생은 ‘어둠 속에’, 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에게는 ‘새 인생’에 대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이미 들었고, 예수님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르티매오는 ‘빛’을 얻기를 희망하면서, 또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르티매오의 만남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3)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바르티매오의 말은, 예수님을 이미 ‘메시아’로 믿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고, 또 예수님께 ‘새 인생’을 청하는 말입니다. 어둠에서 벗어나서 빛 속에서 걸어가는 새 인생...... 그렇지만 군중은, 그가 몇 푼의 돈을 청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방해하지 말라고 꾸짖었습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위험한 말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군중이 가로막은 일은, 바르티매오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장벽이었는데, 그가 그 장벽 앞에서 더욱 큰소리로 외쳤다는 것은, 그의 ‘간절함’과 ‘진실함’을 나타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라는 말씀은, 바르티매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하기를 바라셔서 하신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을 것이고, 그가 무엇을 희망하는지도 잘 알고 계셨을 텐데, 그렇지만 바르티매오 자신이 능동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고백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쪽에서 보면, 바르티매오의 간청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증언한 일과 같습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은, 눈을 고쳐 달라는 간청이기도 하고, ‘새 인생’을 달라는 간청이기도 합니다.
4) “다시 보아라.” 라는 말씀은, 그의 눈을 고쳐 주신 말씀이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은, 바르티매오의 믿음을 확인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구원을 향해 나아가라고 격려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구원하였다.’는 ‘구원이 시작되었다.’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시 보게 된 바르티매오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은, 그가 희망한 ‘새 인생’은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바르티매오가 다시 보게 된 일은, 요한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들에 연결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일’과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바르티매오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났으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따라야 합니다. 만일에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안 믿는다면, 그것은 그냥 예수님을 구경한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긴 하는데, 따르는 일은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곧 ‘따름’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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