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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월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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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월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 루카 18,35-43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더욱 푸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나무들이 서로 경쟁하듯 푸르른 잎사귀를 뽐내는 여름에는 잎이 크고 화려한 다른 나무들에 가려 소나무나 전나무의 잎이 잘 보이지 않지요. 그러나 가을을 지나면서 다른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온 세상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면, 그 흰 눈 속에서 소나무와 전나무의 가녀리지만 푸른 이파리들이 비로소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겁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그렇게 ‘독야청청’ 할 수 있는 건 여름 내내 더 크고 많은 잎들을 내는 다른 나무들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묵묵히 그러면서도 착실히 자기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은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남들하는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어디로 왜 무엇을 찾아 가야하는지를 생각하며 가야 합니다. 또한 내가 가야할 길이 세상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가시밭길’일지라도, 그래서 다른 이들로부터 비난과 배척, 핍박을 받을지라도 끝까지 가야 합니다. 오직 그 길의 끝에서만 하느님 나라를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눈먼 이’가 바로 그런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괜히 나서서 예수님 가시는 길을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잠자코 있으라’고 사람들이 꾸짖었지만,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단 한 번의 기회, 이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대와 핍박을 무릅쓰는 건 단지 그런 간절함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간절히 청하는 이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실 거라는 믿음, 그분은 자기가 청하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이 주님께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 세상의 방해를 거슬러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지요.
그런 그의 간절함과 믿음을 다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따스한 음성으로 그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대답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이 어느 새 ‘다윗의 자손’에서 ‘주님’으로 바뀌어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예수님과 물리적 거리만 가까워진 게 아니라, 마음의 거리까지 가까워진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그러나 나와는 딱히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 자신의 삶 전체를 주관하고 섭리하시는 ‘주님’이 된 것이지요. 그런 그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가 바라던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단지 그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주님께 대한 참된 믿음을 통해 자기 삶과 세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구원을 향해 나아갈 힘을 주신 겁니다. 주님께 믿음으로 세상과 삶을 ‘다시 보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요. 더 이상 부질 없는 것들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가진 게 많든 적든 상관없이, 고통이 작든 크든 문제 없이 충만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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