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4일 (월)
(홍)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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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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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11-23 ㅣ No.186460

* 오늘의 말씀(11/23) :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 제1독서 : 2사무 5, 1-3

* 제2독서 : 콜로 1, 12-20

* 복음 : 루카 23, 35ㄴ-43

35ㄴ.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전례력으로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한 해를 끝맺고, 다음 주간부터는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교회는 오늘을 모든 시간의 주인이신,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대축일은 단순히 한 해의 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절정을 드러내줍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왕(임금)’은 대체 어떤 왕인가?

이를 오늘 <본기도>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하시는 성자를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시어 만물을 새롭게 하셨으니,

모든 피조물이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섬기며 끝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두 가지 내용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만물을 자신 안에 모아들여 새롭게 하시는 분으로서의 온 누리의 ‘왕’이심을 말해주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그리스도의 왕’‘그분의 왕권’에 대해, 이렇게 밝혀줍니다.

<제1독서>에서 원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2사무 5,2)

이스라엘 백성에게 ‘목자’는 하느님께 적용된 호칭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결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 길로 나를 끌어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 23,1-3)

그러니 ‘목자’는 명령하고 군림하는 이가 아니라 돌보고 생기 돋우어주고 이끌어주고 살려내는 이입니다. 그러니 백성이 임금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백성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당시의 임금들에 비추어 본다면, 가히 혁명적인 선언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사가는 이를 이렇게 전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을 위하여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이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요한 10,11 참조)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왕’ 모습입니다.

<제2독서>는 그리스도의 우주적 온 누리의 주권과 다스림을 찬양하는 “그리스도 찬가”입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주셨고,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게 되었음을 노래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를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위에 새겨진 “유다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전해줍니다. 곧 그분의 ‘왕’의 모습을 생생히 드러내줍니다. 바로, 십자가에 같이 매달린 두 강도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왕의 다스림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밝혀줍니다. 곧 ‘그리스도의 왕직’의 참된 의미를 밝혀줍니다.

대체, 그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이고, 어떤 왕이 다스리는 나라인가?

사실, 오늘 <복음>은 죽음의 현장이지만, 동시에 새 생명의 탄생을 말해줍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새 생명으로 태어남을 말합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믿는 이’, 곧 십자가에 달린 죄수에게 선언합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그렇습니다. “오늘”은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 온 세상에 흘러들어오게 합니다. 이 하늘나라는 우리가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이하여 받게 되는 선물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건네주신 이 용서와 화해를 위한 사랑의 다스림이 바로 ‘그리스도의 왕직’의 진정한 의미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암브로시우스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왕좌는 십자가이며, 그분의 왕관은 가시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가시의 왕관이야말로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진정한 영광의 상징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십자가를 통하여 용서와 자비의 ‘그리스도의 왕직’을 수행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처럼, 용서와 자비가 다스리는 나라를 이루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일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직무에 충실할 것을 되새겨보며, 마틴 루터 킹이 살해당하기 전에 한 유명한 말을 되새겨봅니다.

“여러분이 우리에 대해서 세상의 온갖 폭력을 다 사용할지라도,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주님!

당신 십자가와 함께 있게 하소서

비참하고 초라하고 조롱받고 모욕당하고

죄를 뒤집어쓰고 죽을지라도 용서할 줄을 알게 하소서.

용서와 화해, 섬김과 사랑이 다스리는 당신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제 자신을 내어주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하소서.

하여, 나의 뜻을 이루려는 나라가 아니라 당신의 정의와 진리,

생명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당신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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