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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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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중에 ‘하늘공원’엘 다녀왔습니다. 가을 억새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파란 하늘과 누런 억새가 참 잘 어울렸습니다. 하늘공원은 맹꽁이 차를 타고 올라갈 만큼 언덕 위에 있습니다. 언덕을 올라가면 억새가 가득한 광장이 나옵니다. 시에서는 관리를 잘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달라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을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하늘공원은 1970년대에는 ‘난지도 쓰레기처리장’이었습니다. 서울시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모으니 큰 산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면서 거대한 쓰레기 산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하늘공원이 쓰레기처리장이었다는 흔적이 지금도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아직도 땅속에서 나오는 ‘가스’를 모아놓은 관이 있었습니다. 쓰레기 산이었던 난지도가 아름다운 하늘공원으로 변하였듯이, 대한민국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변했습니다. 한국의 음악, 영화, 음식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쓰레기 산이 아름다운 공원이 되듯이, 가난했던 한국이 성장하였듯이 신앙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두렵고 무서워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겠다고 했던 베드로는 잡혀가는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변했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당당하게 ‘예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양들을 위해 목숨 바치는 착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하던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하던 바리사이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 교회의 교리와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은 신앙생활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면 신앙인은 변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다니엘, 아나니야, 미사엘, 아자르야’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야채와 물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살도 찌고, 건강하게 보였습니다.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비록 삶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주님의 제단에 정성껏 봉헌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하는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랑입니다. 재물과 시간과 능력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내어놓는 사랑입니다. 신앙인은 바로 두 번째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들어도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하셨던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비록 삶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주님의 제단에 정성껏 봉헌했기 때문입니다. 나눔과 봉헌은 많이 가져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로 향한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 재물, 학식, 직업이 아닙니다. 능력, 재물, 학식, 직업은 우리의 인격을 감싸주는 옷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 마음을 이웃과 세상을 향해 나누는 우리들의 정성을 보십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간, 이웃을 사랑하는 시간,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16시간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신앙의 십일조입니다. 예전에 선배 신부님께서 ‘인생은 흑자’라는 강론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순간을 살아도 우리 인생은 흑자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걱정과 근심, 두려움과 절망은 모두 날려버리고, 희망의 날개를 펴고 주님께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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