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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고싶은 사제의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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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고싶은 사제의글 불효의 눈물은 언제쯤이면 마를까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내 유산의 전부 - 장판을 떠들고 꺼내주신 만원짜리 두 장! 성모님, 한국보다 하루가 늦은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화할 곳이 없었습니다. 천국에는 전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성모님,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따금 보고 싶습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 보고 싶습니다. 성모님, 제발 부탁이오니 제가 보고 싶은 저희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 사실 성모님은 아직도 제 어머니처럼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성모님, 당신은 제가 당신 앞에 무릎 끓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때로는 2단도 끝내지 못하고 졸다가 이불속으로 들어가던 때도 많았습니다. 아니 앉아서 드리는 묵주기도보다 잠자리에 누워서 기도를 드릴 때가 많았습니다. 솔직히 잠을 청하기 위해 묵주기도를 드린 날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다가 잠들어 이리 저리 뒤척이다 어쩌다 손에 걸려 있는 묵주를 잠결에 만져 보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손에서 떨어져 나간 묵주를 더듬더듬 찾아 손에 들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중얼거리며 다시 잠을잡니다. 어머니 당신을 이렇게라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저입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이 너무도 힘들고 저 혼자는 갈 수 없기에, 성모님 당신께 이렇게 잠결에라도 묵주를 잡고 매달려야 했습니다. 어버이 날 아침 주교좌 성당에 가서 아버지 같은 주교님과 함께 영어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어머니 같은 캐네디언 할머니와 로빈훗 영어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꼬부라진 글씨를 더듬거리며 읽으면서 졸음에 겨워 하품을 하는데, 문득 침을 흘리고 고개 방아를 찧으시며 성서를 읽으시던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오늘이 어버이 날이라 그랬던가 봅니다. 그리고 산책 나가 뜯어온 소금물에 저린 참나물을 찹쌀 풀을 끓이고 새우젓과 고춧가루를 넣고 김치를 담갔습니다. 고추가 매운 탓인지 손끝이 아렸습니다. 사랑은 이처럼 아린가 봅니다. 참나물 김치를 담그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퐁퐁에 수세미로 문질렀지만 오른쪽 엄지손가락 끝에 배어있는 푸른 풀물,진한 향기가 어머니의 삶의 향기처럼 옷깃에 스며옵니다. 당신의 죽음을 위해 수의 한 벌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고운 옷 한 벌 없으셨습니다. 홀어머니 8남매의 버거운 십자가, 하지만 어머니는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라는 성서말씀처럼 사셨습니다. 아니 뒤돌아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외사촌 형이 병문안 오셔서 용돈으로 주고 간 빳빳한 만원자리, 장판을 떠들고 꺼내주신 만원짜리 두 장이 저에게 물려주신 유산의 전부였습니다. 어머니는 새벽 3시에 일어나 25분을 걸어 4시 예배를 보시고, 자식들 밥과 도시락을 챙겨주시고 하루 종일 모내기 품팔이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샛거리로 나온 보름달 카스테라를 남몰래 고쟁이에 넣으시고 물로 배를 채우셨습니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고쟁이 속에서 떠오른 달덩이 같은 카스테라를 저희들에게 주시고 서둘러 보리쌀을 갈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하셨습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밀린 빨래를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양말은 왜, 그렇게 구멍이 잘 났는지요. 나이롱 양말에 전구를 넣고 꿰매어야 했습니다. 긴긴 겨울밤이면 똑똑 내복의 이를 잡으시고 참빗으로 머릿속의 서캐도 잡아 주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주무시기 전에 꼭 성서를 읽으셨습니다. 돗수도 맞지 않는 5일장에서 사온 돋보기를 얼마나 피곤하시면 조시다가 떨어뜨려 귀뚱이가 깨졌겠습니까. 깨진 돋보기를 쓰시고 더듬더듬 성서를 읽으시면 때로는 “저렇게 조시면서 왜 성서를 보실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천근만근 납덩이 같은 어머니의 삭신을 주물러 드리지 못한 채, 오히려 “엄마! 제발 좀 주무세요!” 큰소리로 말할 때도 있었습니다. 수박을 먹으며 컴퓨터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수박을 씹는 것인지 눈물을 씹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눈을 감습니다.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바지가랑이에 떨어집니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돌아와 다시 의자에 앉았습니다. 다시 흐르는 눈물, 입까지 흘러내린 콧물을 삼킵니다. 불효의 눈물은 언제쯤이면 마를까요? 성모님, 저는 보잘것 없는 저희 어머니의 일생을 보면서 성모님의 일생이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짐작합니다. 막둥이 5살 때 남편을 하늘로 보내드리고 8남매의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들 몰래 훔쳤을 홀어머니의 눈물. 성서도 더듬더듬 읽으셔야 했기에 남들은 무식한 어머니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만 고작 만원짜리 두 장 남겨주고 간 가난뱅이 어머니 일수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어머니들이 볼 때, 당신을 위해 좋은 옷 한 벌도 마련하지 못한 참 어리석은 어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사업체나 아파트를 물려받고, 죽을 때까지 쓰지 못하고 죽을 만큼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어머니의 일생을 통해 깨닫습니다. 어머니는 저희에게 가장 큰 유산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셨습니다. 개신교 집사이셨던 어머니는 말로 입으로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다가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새벽교회를 가셨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더듬더듬 자장가처럼 성서를 읽어 주셨습니다. 신자집에 장례가 나면 장례가 끝날 때까지 부엌에서 허드렛 일을 하셨습니다. 보리쌀 위에 쌀을 얹어먹던 그 시절, 쌀을 씻기 전에 아궁이 옆에 놓고 작은 단지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식구 수대로 한 수저씩 좀도리쌀을 모으셨습니다. 대장염인 줄만 알고 자식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진통제 한 알도 못 드시고 한 시간 두 시간 대장암의 진통을 밤새 봉헌하셨습니다. 제가 사제로 살아가는 것은, 남들이 볼 때 무식하고 가난하고 보잘 것없는, 저희 어머니의 새벽예배와 꾸벅꾸벅 조시며 읽어주셨던 더듬거리는 그 성서의 말씀, 좀도리쌀을 모으신 가난한 과부의 사랑, 암의 진통마저 봉헌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기도의 삶 때문입니다. 어머니,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모님께 빌어주세요. 제가 어머니의 반만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시라고요. 어머니처럼 외로움과 고독과 절망, 사랑과 평화마저도 봉헌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어머니, 지금 천국에서 행복 하시지요? 어머니는 저에게 천국의 길을 보여주신 오직 한 분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멘! - 김종광 신부- (캐나다 피터보르 한인성당 주임신부) [가톨릭다이제스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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