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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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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1일 주님 세례 축일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던 어떤 사람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커다란 실패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전 재산의 절반을 잃을 정도의 큰 실패였습니다. 이 아픔은 위로받고 싶어서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업에 실패해도 재산이 절반이 남았으니 대단하네.” 이 말이 자기를 놀리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자 이렇게 말합니다. “사고로 눈이 한쪽만 보이는 사람은 행복할까?” “한쪽만 보이니 불행하겠지.” “그러면 두 눈이 다 안 보이던 사람이 한쪽 눈을 보게 되면 불행할까?” “아니지. 행복할 것 같아. 한쪽 눈이라도 보게 되었으니까.” “똑같이 한쪽 눈만 보이는데 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할까?” 그렇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만을 보는 사람과 자기가 잃은 것만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과 하느님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먼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 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태 3,15)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 틈에 서서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며, 이를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여시겠다는 결단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 역시 주님의 이 뜻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뜻에 맞지 않아 보여도, 하느님의 더 큰 뜻을 위해 순명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 세례를 주었으며, 하느님께서도 이를 기쁘게 받아들 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일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을 철저하게 따르는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삶을 견디지 못하게 된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다시 살기 시작하는구나. (알베르 카뮈)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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