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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화요일 복음을 묵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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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복음 묵상은 저명한 신부님들도 많이 계시고 해서 저는 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평신도는 사실 복음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도 주제 넘는 일인 것 같기도 해서도 그렇습니다. 만약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이야기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 같은 건 그런 오류를 범할 확률이 낮아 한번 새벽에 묵상한 걸 올려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권위'입니다. 또한 권위는 어떻게 해서 생기고 또 어떻게 해야 권위가 있는가 하는 것도 오늘 복음을 관통하는 핵심주제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한번 묵상하기 위해 먼저 세상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작년 12월 3일에 내란이 발생했습니다. 이제 최종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고 결과가 어떻게 내려질지는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에 앞서 지금 근현대사적으로 정치사에서 있어서 두 명의 대통령이 파면됐습니다. 헌재에서 박 대통령과 윤 대통령의 파면선고 영상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됩니다. 지금의 대통령제는 옛날 조선시대 왕처럼 세습이 되는 권력이 아닙니다.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국민이 투표로써 권력을 이양하는 제도로 임기 동안 권한을 넘겨준 것입니다. 이때 법률적인 관점으로 표현하면 유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보라는 개념은 단순 한글 의미와 법에서 사용할 때 의미는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어려운 개념인데 단순하게 표현하면 넘기긴 넘기는데 완전한 것을 독보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고 단순히 어느 일정 기간 동안에 법률과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위치에 있다는 걸 의미하게 됩니다.
평범한 시민이 이 개념을 이해하려면 이 정도 이해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대통령이라고 해서 그냥 왕조시대 왕처럼 제왕적인 권력을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조선시대 왕조시대 때도 제왕적인 권력을 행사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도 엄밀히 말하면 요즘 현대와 같은 법률과 헌법에 의해 제약을 엄격하게 받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권력을 절대적으로 행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역사를 공부하면 알 수 있습니다. 과거와 지금 양 제도를 놓고 봤을 때 우리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권력을 독점적으로 사유할 수 없게 한 것은 마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권력이 부패하면 부조리가 생기고 그런 부조리가 생기면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정치 고전적인 의미에서는 정사가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막기 위한 장치가 바로 현대에서는 법률과 헌법입니다. 최종적인 것은 최상위 규범인 헌법에 있습니다.
헌법은 국가의 근본 조직과 기틀을 이루는 최종 규범인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소추가 됐을 때도 최종 탄핵 판단의 기준이 헌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헌법을 해석할 때 단순히 헌법 조항에 있는 법 조문의 법률 조항만 가지고 문리해석만 하거나 아니면 유권해석을 해서 판단을 할까요? 만약 그렇게 판단을 해서 탄핵 인용이나 기각 아니면 각하 결정을 한다면 이건 나라의 헌정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시는지요? 그렇게 되면 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법을 해석하는 재판장의 자의적인 해석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법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염두에 두는 게 바로 헌법의 기본이념에 비추어서 상대적으로 그 이념에 벗어나지 않는 틀 안에서 법을 해석하고 그 이념에 가장 근접한 범위 내에서만 좁게 해석해야 가장 합리적인 재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지금 오늘 복음이 등장하는 권위를 한번 묵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똑같이 적용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복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은 없습니다. 복음 내용만 보면 두루뭉실한 개념밖에 없습니다. 이럴 땐 우리는 그 행간 사이에 없는 것을 묵상해봐야 할 것입니다. 마치 헌법을 바탕으로 하위 법률을 해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대상이 등장합니다. 주목을 받는 대상입니다. 바로 더러운 영에 걸린 사람과 예수님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보여주신 복음의 내용은 그냥 단순히 말씀으로 꾸짓으신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더러운 영에 걸린 사람 속에 있는 더러운 영이 경련을 일으키고 나가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보고 이때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복음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더러운 영에 걸린 사람 속에 있는 더러운 영이 그 말씀에 복종을 하는 걸 근거로 삼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권위 있는 말씀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사실 복음이 아니라고 하고 일반적인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런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지요? 복음이 아니라면 그냥 허무맹랑한 말처럼 이해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걸 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바탕에서 어떻게 해셕을 해야 하는지 그것부터 한번 묵상을 해봐야 합니다. 그냥 아무렇지 않고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놀라워한 것은 단순히 명령하는 소리였을까요? 사실 실제 그럼 소리였다고 가정한다면 왜 그런 소리에 놀라워하고 경련을 일으켰을까요?
거기에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라는 것입니다. 원래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은 원래 뜻과 다른 의미로 우리는 이해를 합니다. 실제 카리스마 뜻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원 본 뜻입니다. 요즘은 그 원래의 뜻보다 변형된 뜻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 사이에 굳어졌기 때문에 그게 대중들에게 많이 인식된 개념이라 그렇게 이해를 하는 게 제가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를 하시는 걸로 상호 약속을 하겠습니다. 그럼 대중들이 왜 예수님에게서 나온 그 소리를 보고 그렇게 반응했는지는 이제 조금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속에는 예수님만이 가진 카리스마가 있었고 그 카리스마는 오늘날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에 제약을 받는 그런 제약을 초월한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런 카리스마는 오늘 복음에서는 유추할 수 없습니다. 이건 다른 복음에서 예수님의 삶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카리스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올린 글 삶 그자체가 기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으로 올린 글에서처럼 바로 예수님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청중들에게 카리스마 있는 가르침이 전달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요? 이건 달리 말하면 마치 이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건 단순히 어떤 권력이나 힘을 가졌다고 해서 그에 합당한 권위가 나오는 게 아닌 것입니다. 그 권력이나 힘에 견주어서 그에 합당한 힘이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권위를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권력을 회수하겠다는 게 바로 탄핵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복음을 이 땅의 모든 신부님들이 정말 한번 깊게 묵상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평범한 신자는 신부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부님께 순명하는 이유는 그 권위가 사제로서 정당하고 합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졌을 때라는 전제 조건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벗어났을때까지 순명을 한다는 것은 마치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이 있는 것처럼 착각해 제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과 같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정치에서 보고 경험한 것입니다. 이점을 굳이 사제만이 아니라 사실 신자도 깊이 묵상해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도 신자라는 신분에 맞는 권리와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게도 대통령이 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신자도 신자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잘 생활하고 있는지 그것도 중요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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