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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3일 (화)
(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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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수원 교구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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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26 ㅣ No.187388

이병우 신부님_"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다.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르1,22) 

 

'하느님의 권위!' 

 

오늘 복음(마르1,21ㄴ-28)은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 권위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십니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 서로에게 물어봅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1,27) 

 

'예수님의 권위는 어떤 권위일까?'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권위'입니다.

'하느님의 힘'입니다. 

 

요즘 인사이동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잘 비우고 버리지 못했던 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짐은 거의 정리가 다 되었습니다. 채움과 비움에 대해 다시금 묵상해 보게 됩니다. 

 

복음묵상글 받아보시는 나이 많으신 어느 자매님께서 종종 제게 이런 답글을 보내 주십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기도하는 나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권위, 하느님의 힘은 기도로부터 나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고, 내가 중심이 되는 삶, 내 뜻을 이루려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교구청에서 본당 인계를 하고, 농어촌사목을 인수받게 됩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어느 자매님의 간절함 대로 기도하는 사제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합니다.

그래서 내 힘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권위를 가지고 농어촌 사목을 시작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저승으로 내리기도 저승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화답송) 

 

(~ 에스8,12)  

 

전삼용 신부님_악마는 사랑 빠진 신학박사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몹시 놀랍니다.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회당에 있던 더러운 영, 즉 마귀도 예수님을 정확히 알아봤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지식으로만 따지면 마귀는 신학 박사입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고 교리를 꿰뚫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왜일까요? 마귀에게는 지식은 있지만, 결정적으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사람을 살리는 권위가 아니라, 사람을 베는 칼이 될 뿐입니다. 

 

요즘 어른들의 권위, 교사의 권위 등이 사라진다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는 어디서 올까요?

여기 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그 답을 줍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 톰슨이라는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개학 날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를 모두 똑같이 사랑한단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맨 앞줄에 앉은 테디 스토다드라는 아이는 꾀죄죄하고 멍한 눈빛을 하고 있어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테디의 시험지에 붉은 펜으로 가차 없이 X표를 긋는 것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날, 아이들이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선생님 책상에 쌓아놓았습니다.

그 틈에 테디의 선물도 있었습니다.

식료품 가게의 누런 봉투를 테이프로 칭칭 감은 볼품없는 포장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포장을 뜯자, 알이 몇 개 빠진 가짜 다이아몬드 팔찌와 반쯤 비어 있는 향수병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그때 톰슨 선생님은 웃음을 멈추게 하고, 팔찌를 차며 "참 예쁘다"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향수를 손목에 뿌렸습니다.

방과 후,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 테디가 머뭇거리며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선생님에게서 돌아가신 우리 엄마 냄새가 났어요." 

 

그 향수는 테디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아껴둔 유품이었던 것입니다.

테디가 돌아간 뒤, 선생님은 책상에 엎드려 한 시간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국어와 산수를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아이들을, 특히 테디를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가르치자 테디의 눈빛이 살아났고, 훗날 그는 뛰어난 의사가 되어 톰슨 선생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의 결혼식 때 선생님을 어머니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권위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얻어집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많이 알면, 높은 자리에 오르면 권위가 생긴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권위는 교탁 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님을 보십시오.

그는 시를 그래프와 점수로 분석하는 교과서의

서문을 "쓰레기"라며 찢어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탁 위로 뛰어 올라가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외쳤습니다.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아나?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학교 측은 그를 "학생들을 선동한다"며 파면했지만, 짐을 싸서 떠나는 그를 향해 아이들은 책상 위로 올라가 외쳤습니다.

'오 캡틴! 나의 캡틴!' 

 

교장의 고함과 징계라는 '제도적 권위'는 아이들을 앉히지 못했지만, 키팅이 보여준 자유와 사랑의

가르침은 아이들을 스스로 일어서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권위입니다. 

 

만약 지식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냉정하게 말해 그것은 '인공지능(AI)'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챗GPT에게 "우울할 때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물어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심리학 이론과 위로의 명언을 1초 만에 쏟아냅니다.

완벽한 답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AI에게서 위로받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함께 울어줄 '심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없는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습니다.

반면, 말주변이 없고 서툴러도 내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눈물 흘려주는 친구에게서 우리는 치유를 받습니다.

권위는 정답을 아는 지능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는 공감 능력에서 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분석하는 평론가입니까?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당시 날카로운 논쟁으로 이단을 공격하던 신학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한 통의 식초보다 한 숟가락의 꿀이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권위는 날선 논리(식초)가 아니라, 따뜻한 사랑(꿀)에서 나옵니다. 

 

사막의 교부 성 안토니오의 일화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어느 날 악마가 안토니오에게 나타나 비아냥거렸습니다. 

"안토니오야, 네가 단식을 한다고? 나는 아예 먹지 않는다.

네가 잠을 안 자고 철야 기도를 한다고?

나는 아예 잠이라는 것을 모르는 존재다.

수행 능력으로 치면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때 안토니오 성인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렇다. 하지만 네게는 없는 것이 나에게는 있다. 나는 순종하고 사랑하기에 겸손하지만, 너는 교만하기 때문이다."

악마는 능력이 부족해서 악마가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말라버렸기에 악마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신 것은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성령, 곧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가득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이 채워져야 마귀를 쫓아내는 권위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지적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내 안에 그 사람을 향한 '꿀 한 방울'이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사랑하려는 목적으로 수고하고 고생하십시오.

그 땀방울이 여러분의 말에 예수님의 권위를 실어줄 것입니다.

아멘!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르 1,21b-28: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회당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거기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24절) 더러운 영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렇게 소리를 쳤다. 악마나 마귀나 아버지와 아드님을 알아보지만 믿음이 없다. 믿음은 위대하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악마들도 믿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사랑이 없었다. 만일에 우리가 악마와 어울리면 믿음을 자랑할 수 없다. 베드로와 악마의 고백은 다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껴안고자 그러했지만, 마귀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떠나시라고 그렇게 말했다. “조용히 하여라.”(25절) 그분은 악마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베푸신다. 

 

베드로는 칭찬을 받았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를 복되다고 하신 것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 마음 안에 있는 사랑을 보신 것이다. 같은 고백을 악마도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랑으로 고백했지만, 악마는 두려움으로 말하였다. 베드로는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죽을 준비도 되어있습니다.”(루카 22,33) 말씀드렸고, 악마는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태 8,29) 하였다. 믿음을 지니되 사랑과 함께 지니라는 말씀이다. 믿음이 없이는 사랑을 지닐 수 없다. 올바른 믿음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김건태 신부님_권위 있는 가르침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위치한 가파르나움에서, 지금은 폐허 상태로 남아 있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가르치십니다. 복음서를 읽어내려가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행적들, 그 가운데서도 아무래도 수많은 기적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쏟게 되지만, 예수님은 무언가를 행하시기 전에 먼저 무언가를 가르치신다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칫 그 행적이, 또는 그 기적이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충족시키는 수준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성자께서 세우실 하느님 나라 건설에 관한 믿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먼저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이 믿음에 대한 보증으로 기적을 행하십니다. 믿음과 거리가 먼 곳에 기적의 빈도가 낮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마태 13,58 참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고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권위는 가르침이나 행함에서, 나아가 봉사에서도 절대 필요한 요소입니다. 이 권위는 화려한 화술이나 놀라운 식견에서 나오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율법학자들, 소위 라삐들은 율법 전문가들로서 가르치는 일에는 이름이 나 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이들의 가르침 자체는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말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행실은 따르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마태 23,1-5). 결국 권위는 말씀을 실천에 옮기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로서, 예수님의 권위는 말씀하신 그대로 실천에 옮기시는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놀랍게도 마르코 복음서에는 더러운 영이 예수님의 신원을 이미 알고 폭로하려는 현장이 여러 차례 발견되며, 그때마다 주님은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신원, 곧 ‘이분이 누구신가?’ 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례 때부터 이미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계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군중들에게는 아직 비밀 사항입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제자들이(마르 8,30), 나아가 이방인들을 포함한 청중들이(마르 15,39) 당신을 메시아로 고백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악령들은 그분의 신원을 미리 폭로해서 구원사업을 방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니, 함구령 곧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는 명령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뜻 실현에 어깃장을 놓으려는 악령 제압은 하느님의 나라 건설의 기초 단계임이 밝혀집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우선 거짓 소식을 제거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엊그제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반성하고 다짐했듯이,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 초대받은 일꾼으로서, 건설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일소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가운데, 예수님처럼 권위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자랑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송영진 신부님_

<신앙생활은 공부하는 생활이 아니라 ‘믿는’ 생활입니다.>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마르 1,21-28).”

1) 신앙생활은, 공부해서 지식을 쌓는 생활이 아니라,

믿고, 믿는 대로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앎’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분입니다.

언제나 항상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으면 깨닫게 되고, 깨닫게 되면 진리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깨달음은 공부해서 얻은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것,

훨씬 더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잘 모른다고, 또는 성경과 교리를

잘 모른다고 주눅들 것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무식한 사람도, 아직 글자를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고, 하다 보면 성인품에 오르기도 합니다.

‘신앙의 증언’은 ‘아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믿음을 삶으로 증명하는 일’입니다.>

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느님의 힘’을 느끼고 몹시 놀랐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권위’ 라는 말은, 사람들을 압도하는

‘하느님의 힘’을 뜻합니다.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람’으로만 생각했는데,

‘사람’일 뿐인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의 힘’을 느끼게

되니까 크게 놀란 것입니다.

여기서 놀랐다는 말에는, 예수님을 안 믿었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놀라지 않고, ‘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달리’ 라는 말은, 당시의 율법학자들이

사람들을 가르칠 때, 옛날의 유명한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만 했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식으로 강의를 하거나 강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가르침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3)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하는 말은,

실제로는 ‘더러운 영’이, 즉 마귀가 하는 말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는 나자렛 출신인 ‘사람’일 뿐이다.” 라는 뜻으로

사용한 호칭입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는 말은,

“우리가 하는 일에 상관하지 마라. 당신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는, “당신은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다.”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고 사람들을 마귀의

억압에서 해방시키신 일들은, 세상에서 하신 일들

가운데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마귀들을 멸망시키려고

오신 분입니다.

마귀들은 정말로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쫓겨난다는 것을 예감했던 것 같긴 한데,

세세하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라는 말은,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는데, 당신은 나보다 약한 존재다.(내가

당신보다 힘이 더 세다.)”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이 말은,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라는 말은,

앞의 ‘나자렛 사람’이라는 말을 풀이한 말이고,

여기서는 특별한 뜻이 없습니다.

이 말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한 말입니다.

<마귀가 한 말은 전부 다 거짓말이고,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귀조차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는데...” 라고 말하는 이는,

복음서를 잘못 해석한 사람입니다.>

4) 사람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느님의 힘’을 느껴서 놀랐고, 예수님의 명령에

마귀가 복종하고 떠나는 것을 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계시고,

그 힘을 직접 사용하신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어서 다시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놀랐다는 말만 있고, 믿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놀라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놀라기만 하고 안 믿은 것입니다.

<안 믿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채로

끝났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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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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