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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그릇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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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1-14 ㅣ No.187400

 

탕을 청소하면서 한번은 우연히 관찰한 게 있습니다. 탕청소를 하다 보면 물을 배수해야 합니다. 밑에 있는 배수구 마개에 고리가 있고 그 고리를 큰 철사 막대 같은 걸로 걸어서 잡아당겨 빼면 됩니다. 손으로 해도 되지만 냉탕 같은 경우는 깊어서 그렇게 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심코 어떤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원래 보통 보면 규모가 작은 목욕탕은 냉탕이 온탕보다 조금 더 크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우나 같으면 대개 냉탕이 온탕보다 3배 내지 4배 정도 규모가 큽니다. 제가 대체적으로 전국 다양한 곳에 일이라든지 아니면 여행 또는 순례를 할 때 경험해보면 그렇습니다. 제가 냉탕에서 발견한 건 물이 빠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거의 온탕과 냉탕을 동시에 빼곤 합니다. 온탕은 당연히 방금 말씀을 드린 것처럼 규모가 작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걸 보고 깊은 울림을 느꼈습니다. 처음엔 특별히 차이가 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근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처럼 온탕에 있는 물은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는 것처럼 물결이 요동치듯 흔들림이 있습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연상하시면 될 겁니다. 근데 냉탕에 있는 물은 정말 조금의 미동도 없이 아주 고요하게 물이 배수가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잔잔합니다. 그런데다가 사우나 내부 천장에는 물방울이 크게 맺혀 있다가 이게 탕에 낙하를 하는 경우는 많이 보셨을 겁니다. 이 방울이 냉탕에 떨어지면 그냥 잔물결이 고요히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모습이 연출됩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순간 묵상이 된 것입니다. 

 

양쪽 탕 속에 있는 물의 양이 사람의 그릇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릇은 그릇인데 이 물의 속성은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그럼 이렇게 비유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냉탕에 있는 물은 하느님의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온탕에 있는 물은 물론 하느님의 속성을 가지고는 있긴 하지만 조금 적게 가진 사람처럼 대입해 묵상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을 배수하기 위해 마개를 뺀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게 관건입니다. 이건 우리가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사고 아니면 사건입니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해서는 인생사에 있어서 고난과 시련 같은 것처럼 대입하면 좋을 것입니다. 사물을 보고 묵상한 것이지만 확실히 사람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대인과 소인배의 차이입니다. 신앙인도 그렇습니다. 대인과 같은 신앙인이 있고 소인배와 같은 신앙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가 중요한 게 아닐 것입니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살다 가는 인생인데 이왕이면 대인과 같은 삶을 살다가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같은 신앙인에게는 이 한평생 생이 다 끝나면 정말 말 그대로 생이 그걸로 끝이면 이것도 별 의미가 없다면 없을 수 있는데 실제 우리 신앙인에게는 또 다른 생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이게 중요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대인과 같은 삶을 사는 게 바로 어떤 삶이 되겠습니까? 바로 신앙적인 관점으로 말하면 의인과 같은 삶을 사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굳이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알아주면 알아주는 대로 괜찮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대인이라면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되어야 그래야 대인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남의 평가에 의해 대인인 것처럼 행동을 하는 그 정도의 마음이라면 그건 대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걸 초월해야 진짜 대인 중에 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그냥 대인이라고 하지 않고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성인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는 기준은 많이 있습니다. 세분해보면 다양할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일정한 기준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성인들의 삶을 이야기한 책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분들은 어떻게 해서 성인이 된 것인가를 많이 나름 분석해봤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처럼은 못 살아도 그래도 흉내는 내보려고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제가 묵상한 것은 이렇습니다. 성인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다 성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엔 우리와 같은 범인이었습니다. 그럼 평범한 범인이 어떻게 해서 성인이 된 것인지 단 몇 줄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주 기본적이고 원론적이고 공통적인 점이 있습니다. 그분들도 죄를 짓고 실수를 해 넘어지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계속 그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똑같습니다. 그다음이 다릅니다. 어떤 것일까요? 어느 시점부터는 계속 이와 같은 게 반복이 되지 않고 차차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범인에서 성인으로 변화가 차차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어떤 마음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내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딸이라는 자녀가 됐는데 그냥 형식적인 아들, 딸로만 살다가 이름 없는 들에 핀 꽃처럼 이 세상에 왔다 허무하게 지는 꽃이 되어 살다가 갈 것이냐 아니면 이왕 하느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으면 좀 더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맞게 살다가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마음가짐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변함없이 가지면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자기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어느듯 범인에서 성인으로 변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성인들의 삶을 잘 살펴보면 그들은 또한 성인이 되고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삶을 살려고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본 성인들의 삶은 그것도 물론 없지 않아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런 고상한 것을 지향하기보다는 그저 하루 하루 주어진 삶 속에서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살려고 하는 소박한 마음이 밑바탕에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큰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살게 되면 그 목표치와 많이 떨어지게 되면 실망을 하거나 아니면 좌절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성인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의욕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보다는 하루 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그 삶 자체를 충실하게 내실을 기하면 그게 한 사람의 일생이 되고 그 일생이 바로 알찬 삶이 돼 우리가 말하는 성인의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가면 좋을지는 당연한 결론이 나옵니다. 성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왕 한평생 사는 인생 그저 평범한 한 범인으로 살다가 가는 소인배의 삶보다는 대인으로 살다가 가면 좋겠다는 묵상을 해봅니다. 

 

사실 이런 대인은 형식상은 대인이지만 실제는 성인과 거의 같은 급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고 해서 다 대인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인처럼 살려고는 노력을 하면 좋을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느님 눈에만 드는 사람이 되면 그 이상 더 좋은 게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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