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수)
(홍)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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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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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1-19 ㅣ No.187486

줌 신앙 특강팀의 이사회를 탬파에서 하였습니다. 3년 전에 저는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큰 파도를 맞으면서 신앙인들의 영적인 갈증을 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채워주려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획하였지만 둥지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사목하였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찾아왔고, 저는 기꺼이 그분들의 둥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분들은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우아한 백조가 되었습니다. 3년 동안 그분들은 6천 명이 넘는 분들에게 줌을 통해서 영적인 갈증을 채워주었습니다. 월 신앙 강좌를 통해서 갈증을 채워주었고, 기획 강좌를 통해서 영적인 풍요로움을 주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서는 대면으로 만나는 피정도 하였습니다. 작년 5월 저는 북미주 한인 사제 사목 협의회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줌 신앙 특강팀에게 새로운 둥지를 제안하였습니다. 북미주 한인 사제 사목 협의회는 이사회를 하였고 줌 신앙 특강팀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로써 줌 신앙 특강팀의 주체는 북미주 한인 사제 사목 협의회가 되었고, 가톨릭평화신문은 후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2026년에도 줌 신앙 특강이 북미주에 있는 교우들에게 영적인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탬파에는 바다와 강을 걸을 수 있는 ‘River Walk’ 길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달라스에서는 숲속의 길을 걸었는데, 탬파의 길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탬파의 발전과 성장에 이바지했던 분들의 흉상을 보았습니다. 역사는 고독한 마라톤이 아니라, 이어달리기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습니다. 탬파에는 달리 미술관이 있습니다. 달리의 작품이 좋아서 수집했던 분이 기꺼이 작품을 기증하였고, 미술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미술관에는 많은 달리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 링컨이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감상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아내 갈라가 창가에 서서 지중해를 바라보는 평범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조금 멀리 떨어져 보면,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더 깊이 바라보면, 그 안에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같은 그림인데,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이 나타납니다.

 

먼저, 갈라의 모습입니다. 가까이서 보이는 갈라는 우리의 일상을 닮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먹고, 일하고, 고민하고, 걱정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 거리에서 살아갑니다. 너무 가깝기에, 삶은 종종 버겁고 의미 없어 보입니다. 고통은 고통으로만 보이고, 십자가는 십자가로만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 보면, 링컨의 얼굴이 보입니다. 링컨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은 인물입니다. 갈등과 전쟁 속에서 통합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부분만 보면 갈라일 뿐이지만, 전체를 보면 링컨이라는 얼굴이 됩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흩어진 사건처럼 보이지만, 시간과 거리를 두고 보면 그 안에 하나의 방향과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의 깊은 바탕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달리는 이 그림 안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숨겨 놓았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실패처럼 보였던 십자가, 멀리서 보면 분열처럼 보였던 역사,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가까이서 보면 고통이고, 멀리서 보면 구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셨고,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주었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등대와 같습니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부활의 표징입니다. 신앙이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리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너무 가까이서만 보면 우리는 갈라의 뒷모습만 봅니다. 조금 떨어져 보면 역사의 얼굴이 보이고,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중심에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어 눈앞의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신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소서. 고통 속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알아보고 그 사랑 안에서 희망을 선택하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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