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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9일 (월)
(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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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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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00 ㅣ No.187494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18-22)”

 

 

 

1) 여기서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라는 말씀은, “혼인 잔치가 이미

 

시작되었다.”, 즉 “메시아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 라는

 

선언이고, 또 “메시아 시대는 ‘기쁨의 시대’다.” 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에서 ‘단식’은, ‘슬픔’을 나타내는 단식입니다.

 

그래서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는, “신랑과 함께 있으니 슬퍼하지 마라.”입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단식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회개하는 ‘슬픔의 단식’이었습니다.

 

<뜻은 그랬는데, 실제로는 자신들의 신심을 과시하는

 

위선이었고, 형식적인 단식이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메시아 시대’가

 

시작되었고, 구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기쁨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메시아를 기다리는 ‘슬픔의 단식’을 하면 안 됩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는, “메시아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슬픔의 단식을 하지 마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거의 대부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안 믿었고,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에게로 넘어온

 

몇 명 외에는 대부분 예수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냥 계속 메시아를 기다리는 단식을 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라는 비난은(마태 11,19),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를 향한 비난이었을 것입니다.>

 

 

 

2)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회개할 때, 회개한다는 표시로 하는 단식은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은, 표현으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날’인데, 넓은 뜻으로는 “죄를 짓고

 

주님에게서 떨어져 있을 때”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단식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회개할 때 스스로 단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단식은 주님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단식입니다.

 

 

 

3)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라는

 

말씀과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구약시대의(또는 유대교의) 낡은 관습으로

 

메시아 시대의 기쁨을 망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에서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사도 회의가 연상됩니다.

 

당시 일부 유대계 신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라고 주장한 일이 있었습니다(사도 15,1.5).

 

<그런 주장은 율법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고,

 

예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주장입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사도 15,10-11).”

 

이 말은, 지금은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은총의 시대’이며

 

‘성령의 시대’ 라는 선언이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신앙을 재확인하는 가르침입니다.

 

그 당시 사도 회의는 유대교의 율법들과 관습들을

 

거의 대부분 공식적으로 폐지했습니다(사도 15,28-29).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기 시작한 것입니다.

 

 

 

4)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새 부대’는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입니다.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안식일 논쟁’이

 

좋은 예입니다(마르 2,23-3,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날이다.” 라고

 

가르치시면서,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새 포도주’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새 부대’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안에도

 

바리사이들 같은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각종 규칙들과 법들만 의식하면서

 

기쁨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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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2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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