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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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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6세가 되서 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성당 소속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하는 마음도 좀 변했습니다. 성직자 계층은 좀 다르지요. 그러나 신자 계층은 Spectrum이 너무 다양합니다. 좀 어려운 것은 위계질서가 온전히 있고 그 위계 질서가 무너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계질서라는 것도 어지 보면 안에 성령이 없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당의 장이라는 분들과 잠시 대화를 하다보면 세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찍어 내리는 것과 같은 대화를 주로 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선민 사상 같은 것이 있어요. 그리고 자신 안에 축적된 생각들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들을 보게됩니다. 한편으로는 좀 불쌍해요. 나름 시간내서 성당에 나와서 시간과 물질적인 것을 나름 봉사한다고 하는데 그 안에 성령이 없이 내 안에 내가 주인이 되어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참 불쌍하구나.. 저런 분들이 나이들어서 몸이 병들게 되면 참 비참하게되는데 그런 결말을 왜 모를까? 영혼의 성화의 여정, 완덕의 여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 몸에 병이 들어서 어찌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대부분 절망 속으로 들어갑니다. 안에 성령이 없이 거짓 신앙으로 혹은 외부에서 주는 기쁨으로 잠시 자신의 영혼의 말라 빠진 모습은 못보고 생활하다가 육신이 완전히 어찌 못할때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게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은 회개의 연속입니다. 매일 매일 하느님 아버지 품인 영적인 모습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입니다. 세상은 육적인 것이기에 매 순간 유혹을 빠지지만 그러나 우리는 매 순간 영적인 아버지를 보고 매 순간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길을 걸어가야 하는 숙명입니다. 그곳의 종결점은 주님 닮은 자로 성화되어서 성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영원한 기쁨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기쁨을 안기 위해서는 나는 죽어야 가능합니다. 육적인 나에게서 결별이 있어야 참 나,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머무실 수 있는 길은 나를 비우는 것, 내가 죽는 것입니다. 매 순간 죽음을 마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육적인 나와 결별하고 영적인 나로.. 내어 맡김입니다. 영적인 나.. 사울이 주님의 법을 어겨셔 주님으로 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다음 사람을 찾는데 이시아의 아들을 찾아 가게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보니 세상에서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들이 앞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천거하려는 순간 주님이 거부하십니다. 사무엘은 안에 영적인 사람이기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발견하게되고 주님으로 부터 불림을 받게 되는데 그것도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자로 간택됩니다. 사무엘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안에 주님의 영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도 보면 주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뜯어 먹습니다. 역시 주님의 제자됨의 길은 가난하고 배고품의 연속이고 주변의 이리와 늑대, 사자, 사람들로 말하면 오늘과 같이 비난하는 사람들로 들러 쌓인 길입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않될 것을 한다? 제자들은 배고파서 땅에 가서 보리 이삭을 뜯어 먹는것을 바리사이는 제자들을 보고 비난합니다. 나름 바리사이는 자칭 의로운 사람으로 안식일에 쉬지 않고 밀밭에 나가서 일한다는 것으로 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안에 성령이 없는 사람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영입니다. 내 안에 하느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있습니다. 모든 하느님의 사람은 측은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의 주인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를 보면 공통된 것이 하느님의 영을 알아보고 그분의 뜻을 찾는 것, 이것이 주님이 길입니다. 영혼의 길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거 하심의 결과는 측은 지심의 마음입니다. 사랑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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