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수)
(홍)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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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종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신앙생활은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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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1-20 ㅣ No.187521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마르 3,1-6).”

 

 

 

1) 이 이야기는, 앞에 있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 라는 말씀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라는 말씀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안식일’을 넓은 뜻으로 ‘모든 율법’으로,

 

또 ‘종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은,

 

“종교가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종교를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가 됩니다.

 

 

 

2)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라는 말씀은, “안식일은

 

‘좋은 일’(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날이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합당하냐?”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냐?”입니다.

 

이 말씀은,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과 같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 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목숨을 구하는 일’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뜻하고, 그리고 그 일에는 ‘몸의 병’을 고쳐 주는 일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도와주는 일이 모두 포함됩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0).” 라는 십계명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안식일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선행과 사랑 실천도 안 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예외가 있긴 했는데, 목숨이 위험한

 

응급환자를 구조하는 일은, 예외적으로 안식일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야기에 나오는 장애자는 응급환자가

 

아니니까 안식일이 아닌 날에 고쳐 주어도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 주신 것은, 안식일이

 

어떤 날인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선행과 사랑은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곧바로 실행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3) 사실 선행과 사랑 실천은 요일과 상관없이

 

날마다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더 많이 실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거룩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거룩함’의 반대쪽에 있습니다.

 

‘거룩함’은 선과 사랑으로 온전히 실현됩니다.

 

선과 사랑이 없으면 거룩함도 없습니다.>

 

 

 

4) 안식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종교와

 

신앙생활 전반에 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종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사람을 살리는 곳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생명의 기쁨’이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에 율법들과 계명들로 사람들을 억압하기만 한다면,

 

또 헌금을 강요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생명의 기쁨’을 누리기는커녕 숨이 막힐 지경이라면,

 

그런 종교는 없애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앙생활은 왜 하는가? 내가 살고 싶어서 합니다.

 

율법과 계명은 사람을 살리는 일의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그것들을 지키는 것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생명력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입니다.

 

사랑은 억압이 아니라 ‘섬김’입니다(루카 22,27).

 

“안식일이니까 그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 병자와 장애자를

 

고쳐 주는 일도 하면 안 된다.” 라고 주장하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에는 ‘사랑’도 없고, ‘섬김’도 없고, ‘거룩함’도 없고,

 

‘생명의 기쁨’도 없고, 남을 억압하는 ‘어둠’만 있습니다.

 

반면에, 장애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사랑’이고 ‘섬김’이고 ‘거룩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안식일은

 

‘사랑의 날, 섬김의 날’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병에도 안 걸리고,

 

다치는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을까?

 

자기 자신이 병자가 되거나 장애자가 된다고 해도

 

고집을 안 꺾었을까?>

 

율법주의자들의 종교에는 하느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율법만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종교가 아니고, ‘제 맛을 잃은 소금’,

 

즉 하느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율법주의자 자신들에게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마태 5,13).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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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2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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