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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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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첫 번째 표징을 아름답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성모님은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분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분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였습니다. 하인들은 물을 채운 항아리를 주방장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물은 맛있는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바이런은 가나의 혼인 잔치를 이렇게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습니다. ‘물이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는구나!’ 저도 어머니의 부탁을 받으면 병자성사도 다녀왔고, 혼배미사 주례도 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 봄에 동생 수녀님이 제게 연락했습니다. 멤피스에 있는 한인 성당에 가서 ‘대림 특강’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저는 멤피스 한인 성당도 모르고, 본당 신부님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동생 수녀님은 멤피스 한인 성당 본당 신부님을 잘 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간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도와주면 큰 힘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동생 수녀님의 말을 듣고 멤피스로 가서 판공성사, 미사, 강의를 해 주고 왔습니다. 신부님은 서품받고 처음 간 본당에서 제 동생 수녀님을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몸이 불편해서 서울에 가면 동생 수녀님이 숙소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교우들과 성경 읽기를 한다고 합니다. 신부님의 자상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본당이었습니다. 성모님의 선한 뜻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듯이, 동생 수녀님이 좋은 뜻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9장 38절에서 40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은총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성령은 바람이 부는 대로 임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먼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2026년에는 감사하고, 고마운 일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이해하고 사랑할 일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옵니다. 평화는 이해의 문으로 들어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는데 그때 보이는 건 예전에 보던 것과 다릅니다. 고통의 순간에 욥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걸 주셨을 때 감사드렸다면, 하느님께서 나쁜 걸 주실지라도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몸으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감사드립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언제나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고난의 순간에도 충실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성체성사의 핵심은 성변화입니다. 성변화의 핵심은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 몸이다.” 사제로 살아가면서 많은 경우에 주님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주님께서 하신 방법을 따라 하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았던 적이 많았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움켜쥔 손을 펴 주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명예, 권력, 자존심, 욕심’ 이런 것들을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움켜쥐면 쥘수록 우리는 세상에서 덮쳐오는 유혹을 이겨내기 힘든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가면 우리들 또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버리는 삶입니다. 주는 삶입니다. 오늘 화답송은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이 내 편이심을 나는 아네. 하느님 안에서 나는 말씀을 찬양하네. 주님 안에서 나는 말씀을 찬양하네. 하느님께 의지하여 두려움 없으니,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예수님께서도 자기의 뜻이 아니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주님, 움켜쥔 손을 펴게 하시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저희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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