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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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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알아 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전에 삼성에서 근무할 때 연구소장님이 종기원에서 근무하시다가 제 근무지로 새로 부임하셨어요. 키도 작고 얼굴도 못생겼어요. 그런데 연구 소장님이라고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약력을 소개하는데 참 화려하더라구요. 그래서 연구소장이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도 정년 퇴임을 하시고 나서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하고는 급이 안 맞는 분이어서 그분이 연락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분과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장님이 만나자고 말씀이 있으셔서 가서 만나 뵈었습니다. 너무 차이가 나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만나는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울대 학사와 석사를 받았고 박사를 MIT에서 받은 분이라 말이 될 수 있을까? 삼성와서는 과장부터 시작하여서 임원만 20년 넘게 하신 분인데 ..나하고 어찌 ?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 깡촌에서 술 주정뱅이 아버지 아래서 공부한 분입니다. 중고등학교때는 신문팔이하고 서울대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는데 장학금 받은 것을 아버지 술 값이 없으니 내어 놓으라고 해서 내어 놓고 서울대 4년 동안 어느집 가정 교사로 일하고 그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공부를 마쳤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박사등등의 삶을 들어 보니 이렇게 기구한 삶도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대화를 원하신 것입니다. 저도 어찌 보면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기에 그분이 저를 알아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저에게 일주일에 한번은 꼭 자신의 에세이를 보내주십니다. 1000명의 사람에게 일주일에 한번은 꼭 모두 보내시는데 그런데 저에게는 일대일로 보내주십니다. 삼성의 인맥과 서울대 학맥분들에게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내가 들어갈 직분도 아니고 수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보내주십니다. 기구한 삶의 여정 속에서 그분이 저를 보고 자신의 인생을 보신 것입니다. 키는 작았지만 평생을 일등만 하고 사신 분입니다. 그러나 친화력은 대단한 분입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늘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 분입니다. 소장님도 저의 인생 멘토이십니다. 소장님 뿐만 아니라 고 박종인 라이문도 신부님도 참 기구한 삶이셨어요. 그분도 항상 일등만 하신분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 주경 야독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서강대 경영학과 나오시고 좋은 은행에서 근무하시면서 가난한 형님 집 장만하는데 일조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신부님의 길을 늦게 들어가신 것입니다. 저에게는 신부님이 제일의 인생 멘토이셨습니다. 그런데 소장님이나 신부님은 가난.. 그 안에서 일어서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생존력과 친화력, 신앙심이 있으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런데 영성에서는 더 분명하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마귀가 더 잘 알아봅니다. 마귀도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잡신도 신이니 .. 그러나 하늘의 천신과 구분이 된다는 것은 주님은 사랑이 있고 마귀는 사랑이 없으니 ..그래서 복음에서 마귀가 주님을 알아보고 대화를 걸어 옵니다. 오는 목적은 마귀 자신이 활동하는데 가만히 놓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주님을 알아보는데 주님의 반응은 마귀에게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입을 다물어라 ..그것도 엄하게 말씀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때가 아니기에 주님은 즉시 이들에게 함구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과연 진정으로 나는 주님을 안다고 할 수 있나? 몰라요? 그래서 순례의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직접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마귀도 신이니까요..마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귀와 같은 눈높이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마귀는 예수님과 같은 눈높이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자신과의 거리를 멀리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지 마라..같은 키로 같은 수준으로 바라보고 요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도 하느님을 바라볼 때 같은 눈 높이로 같이 대화를 한다면 진정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눈높이를 가져야 하나? 주님은 하느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에게 순종하신 분입니다. 하느님에게 순종하신 결정적인 순간은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받아들고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십니다. 이 완결의 때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나를 비우고 겸손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완전 무결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내어 맡기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 인간은 내 안에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어서 주님을 알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길은 나를 비우고 겸손히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성령이 임하셔서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인도 하여 주십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하느님께 순종의 믿음으로 걸어가야 예수님과 합일이 되어서 성화된 모습으로 변화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 이후에 하느님께서 일으켜 세우신것과 같이 나도 주님과 같이 죽으면 주님이 나를 일으켜 세우셔서 당신 닮은 존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우리 인생은 팍팍합니다. 이 팍팍한 삶에 피난처를 찾는데 눈높이를 내가 주인이고 주변이 신하로 보인다면 또 마귀의 유혹에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팍팍한 세상일 지라고 온전히 주님에게 나를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걸어가는 길은 복되고 참된 진리의 길입니다. 그 여정 안에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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