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4일 (토)
(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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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_수원 교구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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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1-22 ㅣ No.187562

양승국 신부님_신명나는 사목활동 현장!


함께 사목중인 형제들과 동역자들, 마음 따뜻한 분들의 관대한 사랑에 힘입어 정말 외진 곳에 위치한 피정 센터지만 많은 교우들이 찾아주고 계십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놀라운 일은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멀리 해외에서, 제주, 부산, 광주, 목포, 강원도에서 꼬박 다섯 시간을 달려와 찾아주십니다. 큰 부담감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동시에 신명이 납니다. 조금이라도 더 양질의 프로그램, 더 따뜻하고 친절한 환대로 기쁨을 드리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항상 ‘이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요즘 봉독되는 마르코 복음서는 공생활을 막 시작하신 예수님 공동체의 신명나는 활약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구세사의 주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군중들은 크게 환호했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자체로 위로요 구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유다 지방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도시 사람들, 이두매아 사람들, 요르단 강 건너편 사람들, 북서쪽에 위치한 티로와 시돈 지방 사람들까지 몰려들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군중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 군중의 특징이 무질서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차례가 올 것인데, 조금이라도 빨리 치유의 은혜를 입고자 새치기를 하고, 뒤에서 밀고 난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전장치 겸 군중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짜내십니다.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구해보라고 이르십니다. 거룻배에 타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밀어 육지에서 약간 떨어트려 놓으십니다. 그리고 분위기를 좀 가라앉힌 상태에서 차분하게 말씀을 선포하시고 치유 활동을 재개하십니다.


군중이 예수님께로 몰려드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은총을 입기 위해서 왔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와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들려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겸손하신 하느님, 우리 인간을 향한 극진한 사랑과 자비의 표현인 예수님의 얼굴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교통수단이라고는 특별히 없었던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먼길을 걸어서 왔습니다. 먼 길을 걸어오느라 무척이나 지쳤을 것입니다. 목마르고 굶주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예수님을 뵙겠다는 일념으로, 새 세상을 열어주실 메시아의 말씀을 듣겠다는 목적으로 그 먼길을 거의 달려오다시피 했습니다.


교회를 찾는 우리의 발걸음이 그들처럼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미사참례 차 성당을 찾는 우리들의 마음이 그들처럼 설레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을 기다려왔던 축제에라도 가듯이, 사랑하는 사람 만나러 가듯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그렇게 사람들이 교회로 오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과 함께 구성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활기차고 신명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 교회의 발밑을 한번 내려다봅니다. 그 옛날 초기 교회처럼, 오늘 우리 교회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까?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지친 성직자·수도자들은 상습 피로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비명 속에 양들 사이에서 헌신하고 있습니까? 말씀에 굶주린 세상 사람들은 남녀노소 그 누구를 막론하고, 교회가 제공하는 시원한 구원의 청량음료를 원 없이 마시고 있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김건태 신부님_말씀과 기적

 

오늘 복음은, 문맥상, ‘열두 사도 선택’을 소개하는 내일의 복음을 앞서는 말씀입니다. 복음 저자 마르코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 주위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다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서술합니다. 갈릴래아와 유다와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 속하는 (유다 남부에 자리한, 에돔족의 후손이 살고 있는)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지금의 레바논 지역에 속한) 티로와 시돈에서 큰 무리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군중들을 마주하시는 예수님의 반응은 우리를 다소 당황하게 만듭니다.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방법을 강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 본문은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이 이유가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예수님의 모습은, 밀쳐 대는 일을 두려워하시거나 병자를 멀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망설임 없이 치유의 은사를 선사하시는 분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군중이, 이방인을 포함한 큰 무리가 예수님 주위로 모여든다는 사실로 복음 전파의 대상은 분명해졌고, 이 사실을 곧 사도로 불림을 받을 제자들도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기적이나 행적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를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해야 합니다. 군중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곧 치유의 기적을 소문으로 듣고서 찾아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적인 눈과 귀를 갖추어야 하고, 영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은 기적이나 행적을 보이시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가르치십니다. 가르치신 다음, 그 가르침의 내용 곧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려고 기적을 포함한 행적을 보이십니다.

 

연중 주간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이미 읽고 묵상한 복음 말씀들, 그 가운데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이미 확인한 내용들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카파르나움의 수많은 병자, 나병 환자, 중풍 병자 치유 이야기, 그리고 (어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시면서, 예수님은, 나아가 복음 저자들은, 치유 자체보다도 그 치유 사건이 담고 있는 메시지 전달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병으로 마음까지 병들고 오그라든 사람들, 이들의 치유를 위해 늘 함께했던 선한 이웃들, 옛 전통에 얽매여 치유를 부정했던 완고한 마음의 소유자들, 이들 모두 우리 신앙인들의 긍정적이며 부정적인 본보기들입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시면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과,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역설하십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나선 사도들, 사도들의 뒤를 잇는 우리 모두,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이웃들과 함께 그 나라에 들어설 수 있는 기쁨을 이미 현세에서 누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영적으로 어려운 개념의 나라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하느님이 계시고, 주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행복하다면, 우리는 이미 이 지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더욱 진하게 맛보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그분께 나아와 손을 대려 밀려들었고,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고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11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졌다. 그러나 만진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만졌다. 혈루증 여인이 그렇다. 그녀는 단지 옷자락을 만졌지만,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다(마르 5,27-34).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붙잡고, 결박하고, 매달았다. 역시 만졌지만, 그 만짐은 악의와 불신으로 가득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손으로 만진다고 그리스도를 잡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만져야 그분을 붙잡는다.”(In Iohannis Evangelium Tractatus, 26)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종교적 접촉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을 만지는 것이다. 

 

복음에서 악마도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고백한다. 그러나 그 고백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사랑으로 고백한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악마는 두려움으로 고백한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11절) 성 야고보 사도가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야고 2,19) 믿음이란 단순한 지식의 동의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사랑으로 활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갈라 5,6)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나야 하는 고백이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서도 쉴 틈이 없으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 곧 사랑을 실현하는 사명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이다. 참된 신앙은 단순히 “주님, 주님” 하는 입술의 고백에서 그치지 않고, 삶 전체에서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에는 휴가가 없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의 신앙 고백은 악마의 두려움과 같은 고백이냐, 아니면 베드로처럼 사랑의 고백이냐?” 

 

예수님을 단순히 ‘만지는’ 신앙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을 만지고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우리 모두 날마다 그분을 진정한 주님,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송영진 신부님_<“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마르 3,7-12).”

 

1) 앞의 1장에는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마르 1,33), 여기서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그리고

 

이방인 지역에서도 ‘큰 무리가’ 몰려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소문이라는 것은 원래 그렇게 빠르게, 또 멀리 퍼지는데,

 

아마도 그 소문은 “병을 잘 고치는 예언자가 나타났다.”

 

라는 소문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몰려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몸의 병’을 고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그 병자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말씀’을 들으려고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루카 6,18).

 

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를 마련하라고 지시하신 것은,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뒤의 5장에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라는

 

말이 있고(마르 5,25), 또 6장에는,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퍼진 것으로 보이는데, 5장에 나오는,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자’는 예수님께 청하지 않아도, 예수님 모르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르 5,27-28).

 

우리는 ‘밀쳐 대다.’ 라는 말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예수님을 밀쳐 대는 일이 생겼다는 것은,

 

그 상황이 굉장히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는 것과

 

남들보다 먼저 예수님의 옷을 만지려고 사람들끼리 서로

 

밀어내고 다투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모습은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나타내기도

 

하고, 예수님의 ‘말씀’(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몸의 병’을

 

고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배를 마련하라고

 

지시하신 것은 일종의 ‘거리두기’를 실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밀어내신 것은 아니고,

 

당신이 뒤로 물러나셨습니다.>

 

루카복음 5장을 보면, 그 상황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루카 5,1-3).”

 

3) 예수님께서 ‘거리두기’를 실행하신 것은,

 

‘말씀’을 더 잘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군중이 ‘말씀’은 안 듣고, ‘병의 치유’만 원하면서

 

서로 밀쳐 대고, 또 당신을 밀쳐 대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거리두기’는 앞의 1장에 있는,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라는

 

말씀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치유를 중단하시거나 거절하신 것은

 

아니고, 몰려든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을 먼저 하시고 나서 병자들을

 

고쳐 주셨는지, 아니면 병자들을 고쳐 주신 다음에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셨는지, 그 순서는 모릅니다.

 

군중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순서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에는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만일에 말씀을 듣는 것은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면서,

 

병자 고치는 일을 먼저 하라고 예수님께 요구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무례한 일이고, 잘못된 일입니다.>

 

4) 예수님의 ‘거리두기’를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뒤로 물러나신 일이지만, 실제로는 군중이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밀어낸 일이고, 예수님에게서

 

군중이 멀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렇게 잘못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은 받지 않으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그것’만 달라고 고집 부리는 것......

 

예수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고,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오려고 애쓰시는 분인데, 우리 쪽에서

 

예수님을 밀어내거나 예수님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거리두기’를 하면서 반성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희망은 정말로 좋은 것인가? 혹시 나의 이기심과

 

욕심과 집착에서 비롯된 헛된 바람은 아닌가?”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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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2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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