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 (토)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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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수원 교구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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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2-12 ㅣ No.187957

김건태 신부님_모든 이를 위한 식탁

 

오늘 예수님은 티로 지역을 방문하십니다. 앞서 요르단 건너편 데카폴리스 지방을 방문하여 ‘군대’라는 이름을 가진 마귀 들린 이를 치유하신 적이 있지만, 오늘은 페니키아(지금의 레바론)의 해양 도시 티로를 찾으십니다. 티로는 같은 해양 도시인 시돈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곳입니다(내일 복음 참조). 율법은 이교도 지역을 방문하거나 이교도를 만나는 행위를 철저히 금하고 있기에, 예수님은 분명 율법을 어기고 계신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 대상에 이교도라 해서 제외될 수 없다는 신념에서 이와 같은 행위를 보이신다고 할지라도, 오해를 불식시키거나 쓸데없는 잡음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에서,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 여인의 간절함이 이러한 오해와 잡음의 영역을 무너뜨리고 맙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이교도 여인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하고 청합니다. 청하기에 앞서 “발 앞에 엎드렸다.” 하는 표현은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대한 고백과 아울러 치유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몸짓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응답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에게 ‘강아지’라는 표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손자들을 가리켜 ‘우리 강아지’라고 할 정도로, 귀여움과 친밀함의 대명사로 자리하고 있지만, 예수님 시대의 강아지는 그야말로 ‘개의 새끼’라는 사전적 의미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해석한다면, ‘강아지들’은 이교도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교도들을 멸시하는 표현이며, 구원의 대상은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뿐이라는 전통적인 유다교 사상을 반영하는 말씀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대한 이교도 여인의 반응은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딸의 치유에 대한 간절함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그리스어로 ‘퀴리오스’)은 본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 ‘야훼’를 대신하여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복음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초대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이라는 신성한 칭호로 부름으로써,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 아버지와 똑같은 권능과 영예와 영광을 받으실 분이심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이교도의 입에서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적 호칭이 발설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신앙고백으로 이교도 여인의 기도는 청허되며, 이 여인을 포함한 이교도들도 주님의 식탁에 앉을 자격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보다 먼저 제자들이 확인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뒤를 이어 세상 어디에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마음을 관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일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마음, 오늘 이교도 여인이 생면부지의 예수님께 보여드린 그 마음 말입니다.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곧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여인의 딸은 악령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은총을 입습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이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서, 우리를 통해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애쓰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르 7,24-30: “강아지도 빵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마귀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다소 냉정해 보인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27절) 이 말씀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주님의 시험이었다. 당시는 유다인들이 이방인을 ‘개’라고 멸시하던 시대였기에,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섭섭해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8절)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겸손과 끈질긴 믿음이다. 자신의 부족함과 비천함을 인정하면서도, 은총을 얻기 위해 끝까지 매달리는 믿음. 이것이 기도의 본질적 자세이다. 

 

교부들은 이 여인의 태도에서 깊은 교훈을 보았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그 여인의 겸손이야말로 기도의 열쇠였다. 그녀는 멸시 속에서도 주님을 더욱 굳게 붙들었고, 바로 그 믿음으로 은총을 얻었다.”(Hom. in Matth. 52,3)고 말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믿음은 은총을 불러오는 그릇이며, 겸손은 그 그릇을 넓히는 힘이다.”(Sermo 56,6)라고 가르친다. 아우구스티노는 믿음을 은총을 담는 그릇에 비유하면서, 겸손이 없으면 그릇이 작아져 은총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결국 이렇게 응답하신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29절) 그녀의 믿음이 자녀를 살렸다. 이것은 곧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보여준다. 

 

우리 역시 때로는 주님께서 침묵하시거나,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말한다. 끈질긴 믿음, 겸손한 신뢰,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결국 주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포용의 신비를 볼 수 있다. 복음은 유다인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 은총임을 보여준다. 교리서 543항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으며, 누구든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은 그분 나라에 들어간다.” 가르친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다른 종교인이나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을 멸시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두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귀한 존재임을 기억하며, 겸손과 사랑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이방 여인의 믿음을 본받아 겸손히 주님께 매달리게 하소서. 당신의 은총을 끈질기게 청하며, 모든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이병우 신부님_"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르7,27) 

 

'믿음의 힘!' 

 

오늘 복음(마르7,24-30)은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 지역인 티로 지역으로 가셨을 때,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이방인 여자인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청합니다. 

 

예수님과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와의 대화입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르7,27)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르7,28)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마르7,29) 

 

'단순한 믿음이 만들어 낸 기적'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모욕과 무시(고통) 앞에서도 견디어 낸 믿음이 가져온 기적'입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는, 선택된 유다인들만이 아니라, '모두의 구원(Omnibus Omnia)을 위해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느 누구도 이 구원에서 배제될 수 없다는 '가톨릭(Catholic)'의  근본 정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보편적인, 치우치지 않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뜻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입니다. 그는 개 취급을 당했습니다. 아주 큰 모욕과 수모입니다. 하지만 이방인 여자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기 딸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 예수님이 자기 딸을 낫게 해 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을 믿고, 여기에 결정적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기분에 따라 믿지 말고, 고통 앞에서 쉽게 넘어지지 말고, 이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면서 뚜뻑뚜뻑 앞으로 나아갑시다! 

 

(~ 1마카9,22)

 

송영진 신부님_<“자녀들의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마르 7,24-30).”

 

 

 

1) 이 이야기는 우상을 섬기면서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는 증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상 숭배자를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셨다는 증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예수님)께 은총을 청하려면

 

먼저 우상 숭배를 버려야 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참 신앙’과 우상 숭배는 양립할 수도 없고,

 

공존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탈출 20,2-5ㄴ).”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미신을 믿는 것은,

 

십계명 제1계명을 위반하는 ‘큰 죄’입니다.>

 

 

 

2)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은총을 청하려면 먼저 자녀가 되어라.”입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성경에서는 우상 숭배자들을 ‘개들’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개는 ‘들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로 표현하셨습니다.

 

그 여자가 악의적으로 하느님을 거부해서 우상 숭배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좀 더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꾸신 것 같습니다.

 

어떻든 이 말씀은, “강아지로 살지 말고

 

자녀가 되어라.” 라는 뜻입니다.

 

 

 

3)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는 말은,

 

자신이 강아지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고,

 

이제부터는 자녀로서 살겠다고 약속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스러기’ 라는 말은, 여자의 ‘간절함’을 나타냅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예수님과 여자 사이에

 

많은 대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상 숭배가 정말로 헛된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을 것이고, 여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충분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4) 24절의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신 것은,

 

복음을 선포하려고 가신 것이 아니었음을 나타냅니다.

 

아마도 휴식을 취하려고 가셨을 것입니다.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는 말에서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예수님의 소문’을 여자만 들은 것은 아닐 텐데,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여자 하나뿐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 7,8).”

 

 

 

5)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미신이 점점 더 사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미신이 과학의 탈을 쓰고 사람들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 인간 세상의 모습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과학 자체가 미신이 되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콜로 2,6-8).”

 

<미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재미 삼아서(재미로) 점을 보거나 운세를 알아보는 경우,

 

그것도 분명히 죄입니다.

 

재미로 하는 것이니 괜찮다는 말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죄가 아닌 것처럼 속여서 죄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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