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8일 (수)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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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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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9:20 ㅣ No.188566

군대에서 여러 훈련을 받았습니다. 제식훈련, 유격훈련, 행군이 있었습니다. 고된 훈련 중에 기분 좋은 시간이 있습니다. ‘십 분간 휴식이라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그때 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신발 끈도 다시 맵니다. 동료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휴식 시간이 없으면 훈련을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사막을 건너는 행상이 먼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오아시스가 있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오아시스에서 행상은 낙타에게 물도 먹이고, 잠시 쉬면서 목적지를 향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강물이 얼게 됩니다. 하느님의 축복으로 물은 다른 물질과 달리 얼면서 비중이 가벼워집니다. 그래서 물은 얼면서 물 위쪽으로 올라옵니다. 비중이 무거웠다면 언 물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물 전체가 얼어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물속에 있는 물고기는 살 수 없을 겁니다. 다행히 언 물이 위로 가면서 그것이 보온 효과를 내면서 일정 두께가 되면 더 이상 물은 얼지 않습니다. 그리고 얼음이 얼지만 항상 숨구멍이 있습니다. 그 숨구멍이 있기에 물고기는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성서를 보면 휴식 같은 사람, 오아시스 같은 사람, 숨구멍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노아가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 노아, 하느님의 뜻을 따랐던 노아는 구원의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여셨습니다. 노아가 없었다면 하느님의 심판으로 우리는 지금 이곳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였습니다. 정든 땅을 떠나라고 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바쳤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있습니다. 80이 넘은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고난의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도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라고 하셨지만, 교회에는 물질과 자본의 바벨탑이 쌓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문턱이 높아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앞서서 열정이 식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재물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와 같은 열정이 필요합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같은 열정이 필요합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과 같은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열정이 잠들어 있는 신앙을 깨울 수 있습니다. 그런 열정이 굳게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계명과 율법이 아닙니다. 하혈하던 여인이 가졌던 갈망입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인이 가졌던 갈망입니다.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던 소경의 갈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갈망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갈망을 아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태산이 높아도 하늘 아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반드시 정상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사람이 오르지 않고 산만 높다고 탓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산을 오르려는 갈망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산을 보여주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라는 산에 오르려는 갈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열정과 갈망으로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고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열정과 갈망이 있다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습니다. 열정과 갈망이 있다면 영원한 생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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