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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분님_순종하지 않는 자는 진리를 말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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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순 제4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가장 날카롭고도 본질적인 원리를 선포하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한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요한 5,30) 예수님은 당신의 판단이 올바른 이유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순종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뒤집어 보면 참으로 무섭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코 진리를 말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순종하지 않는 입술에는 반드시 자기 이익과 자아의 욕망이 섞이게 되고, 그 말은 결국 생명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주인이 있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하느님이라는 권위에 순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내 안의 자아, 곧 뱀에게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뱀은 언제나 '네 판단이 옳다'고 속삭이지만, 그 끝은 파멸입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이도 파멸로 이끕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형제가 하는 말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부모의 생명이 아니라 자기 자아의 이익을 위해 당신을 이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포장된 학문적 탐욕 - 지니 위그먼(Genie Wiggman)의 비극」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3년 동안 방안에 갇혀 지냈던 이른바 야생아 지니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아이를 구하겠다고 나선 학자들과 치료사들은 처음엔 세상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지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처럼 보였고, 자신들이 지니에게 언어와 인간성을 되찾아줄 '구원자'라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하느님의 질서에 대한 순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문가라는 자신의 '자아'에 순종했습니다. 학자들은 지니를 한 인격체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논문을 증명할 '연구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그 연구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의 사랑이라고 자신들을 설득시켰습니다. 결국 지원금이 끊기고 연구가 한계에 부딪히자, 그들은 지니를 차가운 위탁 시설로 내던졌습니다. 지니는 다시 벙어리가 되었고, 구원받기 전보다 더 비참한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출처: 수전 커티스, 『지니: 야생아의 언어 습득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1977) 자아에게 순종하는 이들이 말하는 '치료와 사랑'은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영혼을 자아라는 뱀의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잔인한 유괴였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의 말끝에는 창조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자아’가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저도 사제가 되라는 뜻이 마음에 들어왔지만, 몇 년 동안 부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만약 제가 결혼을 해서 제가 사제가 되는 대신 아이들을 사제로 만들고 수녀로 만들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저의 말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진리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제가 사제가 되지 못한 것을 저 스스로 위로하는 데 이용당하였을 것입니다. 진리와 옳은 말은 다릅니다. 옳다고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창조자가 줍니다. 그러니 창조자에게 순명하지 않는 자는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의 질서에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거창한 선교 계획을 접고 '순종의 고해소'에 자신을 가두었던 성 레오폴도 만디치(St. Leopold Mandić)가 그 좋은 모델입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레오폴도 신부님은 평생의 숙원이 있었습니다. 바로 갈라진 동방 교회(정교회)의 일치를 위해 동방으로 가서 선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하느님이 주신 일생일대의 소명이자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매일 밤 지도를 보며 동방으로 떠날 날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장상들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레오폴도 신부, 당신은 몸이 약하고 키도 작으니 이탈리아 파도바의 고해소에서 신자들의 고해나 들어주시오." 신부님은 처음엔 큰 내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내 지식과 열정은 동방을 향해 있는데, 왜 나를 이 좁은 상자 속에 가두는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옳은 판단'을 접고 순명했습니다. 그는 2평 남짓한 낡은 고해소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40년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성인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나의 동방은 바로 여기입니다. 장상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진리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렇게 자아를 죽이고 순종의 자리를 지켰을 때, 성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하느님의 진리가 되었습니다. 「성 레오폴도 만디치의 예언적 진리: 파도바 대공습의 기적」 성인이 선종하기 전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도바는 연합군의 극심한 폭격 대상이었습니다. 성인은 동료 수도자들에게 놀라운 예언을 남깁니다. "우리 수도원도 폭격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해소만큼은 하느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곳은 수많은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를 만난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선종한 뒤인 1944년 5월 14일, 실제로 파도바에 대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카푸친 수도원은 직격탄을 맞아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성당의 지붕이 날아가고 벽들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먼지가 가라앉은 뒤 사람들이 목격한 광경은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거대한 수도원 건물 전체가 폐허가 되었는데, 오직 성 레오폴도 신부님이 40년 동안 순종하며 지켰던 그 좁은 고해소 '나무 상자'와 그 곁에 있던 성모상만이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은 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을 버리고 장상의 명령에 무작정 순종했던 성인의 삶이, 그 공간을 진리의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내뱉은 말이 '진리'였음이 하느님의 손가락에 의해 증명된 사건입니다. (출처: 파도바 성 레오폴도 만디치 성지 기록) 혼자서는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생명에 순종하는 자여야 진리를 말하고, 올바른 판단과 심판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기에 진리이십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자신의 사목 표어를 "순명과 평화(Oboedientia et Pax)"로 정하였습니다. 그는 외교관 시절이나 주교 시절, 자신의 뜻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발령을 자주 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왜 나를 이런 험지로 보내는가?"라고 따질 법도 했지만,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교회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것이 내가 가장 안전하게 진리의 길을 걷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성 요한 23세, 『영혼의 일기』 참조) 그가 교황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지식이나 고집으로 교회를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의 목소리에 순종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많은 이가 반대했지만 그는 교회의 전통과 성령의 인도에 철저히 순명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를 해야 할 이유조차 없었지만, 결국 끝나고 나서는 역대 가장 필요하고 완전했던 공의회가 되어 교회 쇄신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부 성 이레네오는 『이단 반박』에서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며, 그분께 불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죽음이다." 또한 성 베르나르두스는 "순명은 자신의 의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지 안에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며 생존 본능을 죽여가는 아이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듯, 우리도 교회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우리 안의 뱀을 죽입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과 나를 따르는 누군가에게 올바른 판단과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의 소유자가 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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