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7일 (금)
(자)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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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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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3-26 ㅣ No.188716

알고리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검색하거나, 제가 즐겨 보는 영화가 있으면 그와 비슷한 것들을 제가 먼저 찾지 않아도 알려주는 기능입니다. 작년 성탄 무렵에 음악 공연을 보았습니다. 전 세계를 순회공연 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주제는 성탄이 관련된 음악이었습니다. 대림 성가도 있었고, 성탄 성가도 있었고, 성탄을 기뻐하는 노래도 있었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멋진 연주와 노래가 무대를 장식한 촛불과 잘 어울렸습니다. 제가 우연히 음악회를 검색해서 공연을 보았더니, 이제는 달라스에 있는 여러 공연장의 프로그램이 저의 스마트폰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슈베르트의 교향곡 5번의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12월에 공연하는 뮤지컬에 대한 소개도 있어서 보려고 합니다. 뮤지컬 제목은 오페라의 유령입니다. 저는 토론토에서, 서울에서, 뉴욕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았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제가 운동경기를 검색했다면 알고리즘은 각종 운동경기에 대한 일정을 제게 보여 주었을 겁니다. 제가 컴퓨터 게임을 검색했다면 알고리즘은 여러 컴퓨터 게임에 관해 알려주었을 겁니다.

 

사순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검색하면서 지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교회는 기도, 단식, 자선을 권장합니다. 교회는 회개와 화해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똑똑하고 잘났던 바리사이의 기도보다는 겸손했던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넉넉한 가운데서 헌금했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의 헌금보다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하느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이방인이었던 시렙다 과부의 집에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했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도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이었던 나아만을 치유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굳이 방문하지 않고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고 했던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학력, 능력, 업적, 재물, 명예, 권력, 신분과 같은 것들에는 큰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습작이라고 생각하는 겸손, 희생, 나눔, 인내, 기도, 봉사, 절제와 같은 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셨던 유다는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반석이라고 하셨던 그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던 베드로는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키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린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베로니카였습니다.

 

저는 교구청에서 5년 동안 성소 국장으로 지냈습니다. 교구장이신 추기경님, 주교님들, 국장 신부님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교황님의 한국방문을 준비하는 모임에도 함께 했습니다. 어찌 보면 제 사제 생활의 걸작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그 5년도 감사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주교님, 다른 국장 신부님들이 많아서 저는 그리 드러날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경기도의 작은 성당에서 3년 동안 지낸 적이 있습니다. 신자 수도 적고, 헌금도 적고, 할 일이 그리 많지도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제 사제 생활의 습작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27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습작과 같았던 그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제 생활 중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 감사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빌라도가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 예수님의 모습에서 결코 걸작의 품위를 찾기 어렵습니다. 가시관을 쓰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습작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구원은 걸작과 같은 빌라도의 권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걸작과 같은 헤로데의 신분에 있지 않았습니다. 걸작과 같은 대사제 가야파와 안나스의 율법에 있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이 사람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었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려고 하는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는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요?

 

사순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편견과 오만 그리고 교만과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참된 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나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욕망, 이기심, 자존심, 명예 그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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