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7일 (금)
(자)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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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03월 26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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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3-26 ㅣ No.188718

김건태 신부님_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같은 유다인들곧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로 소개된 청중을 대상으로 말씀하십니다믿는 유다인들이라고 하니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고백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나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여전히 마음이 닫혀 있는 것 같고그러다 보니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에 급급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믿음의 길에서 ,’ 곧 지성이 전부는 아니다 하더라도 그 중요성까지 거부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잘못된 앎이나 왜곡된 앎이 자칫 신앙을 훼손하거나 뿌리째 흔들어 놓는 경우를 체험 또는 목격한 일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성경 공부교리 공부 등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쌓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그렇지 못하다면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경시하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각자 자기 수준과 능력에 맞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봅니다.

 

예수님은 오늘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하는 말씀으로 말문을 여십니다이 말씀이특별히 죽음이라는 개념이 육체적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띠고 있음을곧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삶을 가리키고 있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음에도유다인들은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하고 응수합니다이 말씀으로 예수님은이 지상에서 이미하느님과 의로운 관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맛보며 살아사후에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시나마음이 닫혀 있던 유다인들에게 이 바람이 전달되거나 호소력을 띠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행적을 통해 당신은 아버지 하느님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키시는 분’, 그래서 예수님께 그분은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하십니다우리 또한아버지에게서 나오셨으니 그분을 온전하게 아시는 예수님이 알게 해주신 아버지를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킬 때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처럼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실 것임을 믿어 고백합니다그러나 영광을 말하기에 앞서무엇보다도 먼저 성자 예수님을 통해 성부 하느님을 알고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는 일에 열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말할수록다시 말해서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한 사명이 완성에 이르면 이를수록반대자들의 저항과 위협은 그 정도를 더해 갑니다: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마치 신성모독과 같은율법 가운데 율법을 어긴 자에게 내려지던 처벌로서의 투석형이 언급될 정도입니다생명을 위해 온몸을 던지면 던질수록죽음의 그림자가 당신을 덮치고 있다는 사실 앞에주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를 높이며 아울러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다짐해야 할 시점입니다.

 

 

 

오늘 하루성부의 뜻인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의 위협도 마다하지 않으신 주님을 마음에 모시며우리도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가족과 이웃의 행복과 구원을 위하여 작은 일에서부터 마음을 모으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신다“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51).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죽음을 늦출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오히려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신다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하느님과의 단절곧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이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다.(In Ioannem Tractatus 43,1)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여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힘이다우리가 말씀을 단순히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삶 속에서 지켜 살아낼 때말씀은 우리를 참된 생명에 머물게 한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56).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떠났던 믿음의 아버지다그는 메시아의 날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날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다히브리서도 이렇게 증언한다“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히브 11,13).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해석한다“아브라함은 예언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날을 보았고 기뻐하였다.(Adversus Haereses IV,5,1) 아브라함의 기쁨은 단순히 미래에 무언가 올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이미 하느님의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 메시아의 현존을 신앙으로 바라본 기쁨이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있었다.(58).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여기서 쓰인 “나는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밝히실 때 사용하신 표현(탈출 3,14: “나는 있는 나다.)과 같은 말이다즉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바로 하느님과 하나이신 분영원으로부터 계신 분임을 계시하셨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주님은 ‘나는 아브라함 이전에 있었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는 있다.’라고 말씀하시어 당신의 영원성을 드러내셨다.(In Ioannem Homilia 55,2) 이 말씀 앞에서 유다인들은 돌을 들어 치려 했다왜냐하면그들에게는 이 말씀이 하느님의 모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그러나 실상 이는 하느님의 가장 충만한 자기 계시였다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예수님께서 ‘나는 있다.’라고 선언하신 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자신께 적용하신 것이다예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계신 하느님과 하나이심을 드러내신다.(211).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말씀을 지키는 길이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가르친다아브라함이 메시아의 날을 보며 기뻐했던 것처럼우리도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을 지키며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예수님께서는 “나는 있다.”하시는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다그분을 믿고 따를 때우리는 결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한 생명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51).

 

이병우 신부님_<사순 제5주간 목요일>(3.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8,51)


'참되게 사는 신앙인!'


오늘 복음(요한8,51-59)의 제목은 '아브라함 전부터 계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당신 자신을 믿음의 조상이요 민족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전부터 계신 분으로 소개하십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끝내는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성과 신성을 두루 갖추신 분'이십니다. 곧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유다인들은 육에 갇혀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메시아요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은 바로 그런 민족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지 못하는 민족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보다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들에게는 구약성경만 있을 뿐 신약성경이 없는 민족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믿는 민족이 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전쟁은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슬람교인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믿는 그리스도인들인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구세주로 믿고 있는가?

죽음이 아닌 생명, 그것도 영원한 생명이라는 완전한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있는가?


생각과 말이 아닌 몸으로 믿는, 행동으로 믿는, 삶으로 믿는, 그런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참되게 사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참스승으로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처럼 사목하는 사제들, 예수님을 닮은 사제들이 이 땅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자비를 바라는 저희를 자애로이 보호하시어, 더러운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한결같이 거룩하게 살아 영원한 상속을 받게 하소서."(본기도)


이병우 루카 신부


송영진 신부님_<“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요한 8,51-59).>


 


1)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유한함 속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영원’이라는 시간을 알 수 없습니다.


<머리로만 상상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영원’과 ‘영원한 생명’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알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을 뿐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막연하게 “영원한 생명이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뿐인데, 믿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가르침이 주어져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이 말씀에서 ‘알다.’ 라는 말은, ‘일치’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이란, 하느님,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묵시록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3-4).”


단순히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아닙니다.


“하느님,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행복과 기쁨이 없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이 될 것입니다.


<성모님과 성인 성녀들은 이 세상에서부터 그 일치와 행복과


기쁨 속에서 사신 분들입니다.>


 


2) 51절의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충실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사는 신앙인입니다.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52절의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라는 말은,


“당신은 미쳤다.” 라는 뜻이고, 아브라함도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다는 말은,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번은 죽는다.” 라는 말은


진리가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5-17).”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의 재림을 보게 되는 사람은, 살아


있는 채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들 가운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아 있는 채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2베드 3,13-14).”


‘영원’이라는 시간과 ‘영원한 생명’이 실감나지 않는다 해도,


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도,


신앙인은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는 사람이고,


그 생명을 얻기를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든지 때가 되면, 즉 심판의 날이 되면, 믿음과 희망


속에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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