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일 (목)
(백) 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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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사람의 녹록지 않은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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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신 [93solangia] 쪽지 캡슐

2026-04-01 ㅣ No.2916

 

평생 이기적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있어, 신앙생활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부모님과 지나치게 수평적인 관계에서 성장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남의 밑에서 굴러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매우 이기적인 성격을 가졌으므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은 인생에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진심이든, 아니든 누군가를 따라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초창기에는 따르는 척만 하거나, 거부하고 모른 척하는 등의 몹시 좋지 않은 모습을 하느님께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 단계였으므로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흐린 눈을 해주셨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활 초창기에는 그분의 진노를 거의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저의 모든 걸 마음에 들어 하신다고 착각하며 잘못된 신앙생활을 했고, 저의 죄악이 차오르지도 모르는 채 하느님의 머리 꼭대기에 서려고 했습니다. 하느님을 따른다고 자처하면서도 기존의 제 자아를 버리지 못한 채 기존에 살던 대로 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앙적으로 중요한 일을 앞둔 적이 있었는데, 하느님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분은 저를 사랑하시지만 제 언행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던 겁니다. 누구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제 신앙생활을 그분께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동안 인간적인 영광에만 취해서 전보다 더 상태가 안 좋아진 겁니다. 한마디로 복음의 되돌아오는 악령처럼 저는 처음보다 더 나빠져 있었습니다. 

 

본당에서 신심 깊은 청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은연중에 주객전도가 되어 꼬리표를 지키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그게 죄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하느님을 위함이라며 외면하고 있었지요. 뒤늦게 인정하게 됐을 때에는 율법학자, 바리사이가 된 제 자신만 남아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초라는 말씀을 잊고 여기저기 대단히 거들먹거리고 다녔습니다만, 진실된 신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허황심만 있는 제 밑바닥과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초라함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제가 했던 신앙생활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잘못된 성찰을 하고 있었고, 스스로 죄인이란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후 수도 없이 제 자신을 내려놔야 했습니다. 하나씩 내려놓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제 자아가 그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아서 고통이 수반됐습니다. 자아를 죽여야 하는데, 잘 안 됐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어떤 일을 계기로 한 달 동안 회개하였고, 제게도 변모가 일어났습니다. 제 자신은 몰랐지만 신부님과 주변인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알게 된 겁니다. 

 

그러나 지금 있게 된 이 낮은 자리가 하느님이 보시니 가장 좋은 자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초라함과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기쁘게 임하시는 자리였습니다. 저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으시기 위해서 비천한 죄인인 저를 오랫동안 인내하셨던 것이지요. 많이 울었습니다. 

 

그동안 하느님과 저를 같은 위치에 들어 올리려고 애쓰면서 신심이 깊다고 착각하고, 교만했던 모습을 오랫동안 참으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이후 하느님께, 교구장님께, 신부님들께, 여러 신자들에게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낮아질 수 있었습니다. 그 꼬리표가 떼어진 순간에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진 영혼을 갖게 되었지요. 다윗이 말한 것처럼 제 자신을 낮추고, 더 나아가 타인이 보기에도 제 자신이 보기에도 천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께서 가장 예뻐하는 모습이기 때문이고, 이제는 제가 가장 기뻐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난 감실 성체조배 때 밤샘조배할 예정이라서 내일 일을 새벽동안 하고, 아침부터 자려고 헙니다. 

모두 뜻깊은 성삼일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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