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0일 (금)
(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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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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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4-09 ㅣ No.188984

이병우 신부님_"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24,48)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오늘 복음(루카24,35-48)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24,3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하신 첫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또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당신의 부활이 완전한 육체의 부활임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 다음 그들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24,46-48)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 신앙의 전부요 핵심이며 근본'입니다. 어디에나 가장 중심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이를 말해주고 있고, 이 십자가가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십자가를 믿고, 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부활해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런 모습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너와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하고 매우 구체적인 부활입니다. 우리의 부활도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구체적으로 바뀌는 부활이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부활해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독서를 독서를 통해 만나는 베드로 사도처럼.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사도3,19)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부활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게 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조욱현 신부님_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전히 두려움과 실의에 잠겨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을 본다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절망과 혼란 속에 있었기에부활 소식조차 쉽게 믿지 못한다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잡아 보라 하신 장면(39)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역사적 사실로서의 부활을 증명하는 사건이다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지고 다시 나타나신 것은 죽음을 이기신 참된 승리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Sermo 232,3) 부활하신 몸은 고난과 십자가의 수난을 겪었던 동일한 몸이지만이제 더는 죽음과 부패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이는 우리 신앙의 핵심 진리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에서 자신에 관해 기록된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신다.(44-46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시편 속 예언이 다 이루어졌음을 설명하시며제자들을 말씀 안에서 부활의 진리를 인식하게 하신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주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말씀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는 것이 믿음의 출발이다.(Homilia in Lucam 91,2) 교리서도 강조한다“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특히 그분의 부활을 이해하게 하는 빛이며교회는 이를 통해 진리를 전파한다.(108부활 신앙은 단순한 감정적 체험이 아니라말씀을 통한 깨달음과 체험을 결합할 때 완성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하신다“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48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회개와 죄 사함의 기쁜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해야 했다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부르심이 있다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한다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살고그 기쁨을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제자들의 증언은 단순히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삶으로 보여 주는 증언이다부활의 체험이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인 사랑과 봉사로 나타날 때진정한 증언이 될 것이다.

 

부활의 은총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현재의 삶에서 부활을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이다매일의 일상에서 주님을 만나고성찬과 말씀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며그 체험을 사랑과 봉사의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말한다“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삶에 살아계시며우리가 이웃을 섬길 때마다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신다.(Oratio 45,2) 부활하신 주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말씀 안에서성찬 안에서그리고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체험되는 그분의 현존을 발견하여야 한다그리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증언하며세상 에서 부활의 빛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루카 24,35-48]

 

오늘 복음은 어제의 말씀에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특정인을 대상으로, 곧 마리아 막달레나와 몇몇 여자들과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이 오늘은 처음으로 당신의 제자 공동체 앞에 서십니다. 특정인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하는 반응으로 보아,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는 제자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구원 사업을 펼치기에 앞서 협력자로서라기보다는 당신의 뒤를 이어 이 사업을 이어 나갈 후계자로서 사도들을 직접 선택하시고, 사랑과 인내로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가르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세 차례에 걸쳐 예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음을 열어 파스카의 기쁜 소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 단계를 준비하십니다. 

우선 당신이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구체적이며 물리적인 표지를 보여주시어 마음의 의혹 또는 불신을 극복하도록 이끄시기 위해 당신의 몸을 직접 보여주십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상흔을 내보이시면 하신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답답한 마음 내지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납니다. 이어서 음식을 직접 드시는 모습까지 보여주십니다. 심한 꾸짖음보다는 자비하신 아버지의 언어로 제자들을 부활 신앙으로 이끄시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언어는 “바로 나다.”(그리스어로 ‘에고 에이미’) 하는 표현에서 이미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바로 그 사람’임을 밝히시려는 의도도 있으셨겠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일러주셨던 당신의 이름 “있는 나”(히브리어로 ‘에흐예’; ‘있는 그’는 ‘야훼’)와 표현만 다를 뿐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에서, 부활사건을 통하여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확고히 드러내시려는 의도도 함께 읽어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제자들이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도록 이끄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아직 신약성경이 탄생하기 이전이므로 구약성경을 가르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성경 어느 권의 몇 장 몇 절’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 한 토막, 예언서 한 마디, 성문서의 이러저러한 구절에서 부분적으로 예수님을 찾을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만남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던지시는 하느님의 질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가운데 – 질문에 대한 응답의 여정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 그 모든 질문과 응답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내다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구약성경은 신약성경 공동체에게 신앙의 작품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증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직무를 일러주십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정녕, 성부의 뜻에 따라 당신 자신을 십자가 희생제물을 바치신 것은 ‘죄의 용서’를 위한 것이었으니,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하는 일뿐임을 일깨워주시며, 이를 모든 이에게 알리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따라서 부활 신앙인은 늘 회개를 앞세우며, 이웃에게 회개의 가치를 알리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으로 자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지난날 신뢰 회복을 위해 펼쳤던 ‘내 탓이오!’ 운동을 가슴에 새기며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온 마음으로 살피는, 자신감 넘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송영진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똑같으면서도, 완전히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35-48)>


 


1) 신앙인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자기 자신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음을 믿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지하게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로 부활을 원하는가?


원한다면 ‘지금의 나’로 부활하기를 원하는가?


그게 아니면 ‘완전히 다른 나’로 부활하기를 원하는가?


<‘지금의 나’로 부활해야 한다면,


부활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도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싫어하고 있는 ‘저 사람’도 부활하기를 원하는가?


혹시 ‘저 사람’은 빼고 다른 사람들만


나와 함께 부활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저 사람’과 내가 함께 부활해서, ‘저 사람’과 내가 함께


살아야 한다면, 그런 부활은 하기 싫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2) 우리는 ‘부활 후의 삶’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 20,35-36).”


이 말씀은, ‘부활 후의 삶’은 ‘지금의 삶’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삶’이라는 뜻입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욕망과 욕심들이 더 이상 없고,


갈등도 다툼도 없는, 그런 삶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로 부활해도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나’일 것입니다.


지금 싫어하고 있는 ‘저 사람’을 싫어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함께 부활한 것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마음에, 또 나의 삶에, ‘사랑만’ 가득해야


그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그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완전히 새로워진 나’로 부활할 수 있습니다.


 


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일을


사도들의 관점에서 다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유령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은 유령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계시는 분이었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분이었다. 우리는 환시나


환각을 체험한 것도 아니고 착각한 것도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만난 일은 생생한 현실이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그분을 직접 만났다.”


사도행전에도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라는 베드로 사도의


증언이 있습니다(사도 10,41).


 


4) 부활해서 사도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그 예수님이고, 못 박힐 때 손과 발과


옆구리에 생긴 상처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사도들은


증언하지만(요한 20,20), 그래도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보면, ‘부활 후의 예수님’과 ‘부활 전의 예수님’이


완전히 똑같은 분은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사도들이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셨다는 것(요한 20,19), 또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셨다는 것(루카 24,31) 등이 그 예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부활 후의 예수님과 부활 전의


예수님은 분명히 같은 분이지만, 부활 후의 존재 방식이


부활 전과는 다르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한다면, ‘지금의 나’로 부활하겠지만, 우리도


예수님처럼 완전히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때는 이 세상 자체가


하느님 나라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어 있을 것이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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