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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불교의 '생전예수재' 성경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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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4-10 ㅣ No.188991

 

불교의 생전예수재라는 말 속에 예수라는 말이 들어 있긴 하지만 이건 한자의 의미입니다. 미리 재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재를 지냅니다. 흔히 말하는 49재가 있습니다. 조금 쉽게 이해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것의 목적은 고인의 영혼을 이 지상에 머물지 말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제사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가령 천주교 형식으로 말하면 위령미사 아니면 연미사 이렇게 보면 될 것입니다. 이건 죽고 난 후에 하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원칙이 그렇습니다. 사실 의미상 보면 이것보다도 더 뛰어나고 훌륭한 재가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재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미리 당겨 지낸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조금은 이상한 느낌입니다. 마치 미리 장례미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이건 우리 천주교에서 하는 의식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지만 이걸 성경적인 의미로 한번 보면 전혀 차원이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보시 중에 최고의 보시가 무주상보시입니다. 뭔가 어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최상급의 보시입니다. 생전예수재는 최고의 재라는 그런 공식적인 말은 없긴 합니다만 의미로 보면 이걸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해석하면 최고의 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미리 재를 지낸다는 것의 의미는 이게 죽은 후에 하는 그 재를 그 형식으로 한다는 게 아닙니다. 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살아서 하는 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바로 그 재물을 세상에 베푸는 것입니다. 재물이 가령 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재물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게나 아니면 배고픈 사람에게 식량을 사주는 것처럼 그렇게 베푸는 그 자체를 불교에서는 재라고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사후에 하는 천도재처럼 그렇게 재를 지내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만약 적용한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가장 살아 있는 제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조금 전에 언급을 한 건 단순히 재물을 나누는 걸 말했습니다. 이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자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자선을 베푸는 건 단순히 재물만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영적인 자선도 있습니다. 바로 그건 기도를 해 주거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위로를 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현대적인 기독교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 있을 때 천국마일리지를 적립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행을 적립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불교의 생전예수재는 성경적인 관점에서 봐도 많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그럼 천주교식 생전예수재라고 한다면 그 예가 많이 있겠지만 대표적인 게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이웃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레벨이 다른 사랑이 아닙니다. 첫째가 하느님 사랑 둘째가 이웃사랑인 것처럼 순서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건 한국어로 번역했을 땐 그런데 실제 원어의 의미는 중요도의 차이가 아닙니다. 같은 레벨입니다. 그럼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하느님 사랑이나 이웃 사랑은 순서의 개념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수학적으로는 똑같이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진실하다면 그 사랑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이웃을 그만큼 사랑한다면 그게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하는 게 가장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잘 묵상해보면 그렇습니다. 마태오복음 25장 최후의 심판 그 내용이 이걸 사실 증명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속에 있는 그 작은이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떤 억지 논리가 아닙니다. 바로 정확한 성경을 기초로 한 해석입니다. 논리적으로도 전혀 하자가 없는 논리입니다. 그럼 최종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에 살 때 하느님 말씀대로 사는 게 그게 가장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최종 모든 핵심을 하나로 요약하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내 영혼이 가장 안전하게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천상 마일리지가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불교의 의식을 통해 기독교 관점에서 한번 해석을 해 보고 싶은 묵상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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