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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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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어 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 소설에는 ‘엄석대’라는 학생이 등장합니다. 그는 공부도 잘하고 힘도 강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실의 중심인물이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교실에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숙제도 잘 제출되고, 교실도 정리되어 있고, 선생님께도 모범적인 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 질서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정의로운 질서가 아니라 두려움 위에 세워진 질서였습니다. 많은 학생이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합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 교실은 한 학생의 힘으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되고 맙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학교에는 이른바 ‘일진’이 있습니다. 힘이 강한 학생이 학교의 질서를 정합니다. 약한 학생들은 그 질서에 순응하거나 침묵합니다. 그곳에서는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곧 정의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힘으로 유지되는 질서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언젠가는 그 질서의 모순이 드러나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떠올리다 보면 요즘 세계의 국제 정세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갈등의 소식이 계속 들려옵니다. 러시아는 힘으로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습니다. 4년째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서 미국의 법원에 세웠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침략했습니다. 세계 경제에 큰 손실을 줬습니다. 군사력과 이해관계, 정치적 계산 속에서 긴장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다치고,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경제도 어려워지고 세상은 더 불안해집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국제 정세를 냉정하게 바라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언제나 한 걸음 물러서서 질문해야 합니다. 무엇이 하느님 앞에서 옳은 일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힘이 정의를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정의가 힘을 다스려야 하는 것인지 묻게 됩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논리만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불러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당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질서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질서는 진리 위에 세워진 질서가 아니라 두려움 위에 세워진 질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위협하며 침묵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초대 교회의 신앙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고백입니다. 세상의 권력은 때때로 침묵을 요구하지만, 복음은 침묵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사도들은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옳은 일을 선택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이들의 말을 쉽게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부활 신앙은 단순히 마음속에 간직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증언하는 믿음입니다. 두려움 속에 숨어 있는 신앙이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신앙입니다. 교회도 오랜 역사 속에서 같은 가르침을 전해 왔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전쟁보다 평화를, 폭력보다 대화를, 힘보다 인간의 존엄을 강조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단순히 갈등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정의와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국제 정세를 바꿀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복음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힘의 논리로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랑과 진리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도들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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