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1일 (토)
(백)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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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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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4-10 ㅣ No.189003

김건태 신부님_일상생활 속의 주님 체험

 

 

오늘 복음은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하는 말씀으로 끝맺음합니다이 발현 횟수는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서에 따른 것으로, ‘주간 첫날 저녁’ 곧 부활하신 그날 토마스를 제외한 열 제자에게 발현하심이 첫 번째(요한 20,19-23), ‘여드레 뒤에’ 토마스를 포함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심이 두 번째(요한 20,24-29), 그리고 순서상 오늘 복음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발현이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첫 번째와 두 번째 발현 이야기가 내일모레 부활 제2주일 복음 말씀으로 봉독 됩니다). 사도이며 복음 저자 요한이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발현 기사에 횟수까지 언급하며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바로 제자들이 부활 사건의 공적인 증인이 되어야 하고이들을 통해서 세상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 사건과 신앙이 널리 전파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제자들은 마치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상태로일상의 생활 또는 생업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어디하루 이틀의 일이었겠습니까루카 복음서에 따르면(루카 5,1-11), 초면의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저어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하고 말씀하시자베드로가 스승님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하며 어부들의 일상이 늘 그러함을 이미 접한 바가 있습니다그러함에도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려 놀라운 경험을 했던 과거의 일이 다시금 펼쳐집니다인간적으로는 또는 경험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주님의 도우심만 있으면그리고 그분의 말씀만 따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신앙 체험을 다시금 목격합니다.

 

곁에 있던 제자가 주님이십니다.” 하고 일러주자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듭니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겉옷을 입고빨리 헤엄쳐 그분께 다가서기 위함입니다이것저것 계산하지 않는 베드로의 저돌적인 순수함이 돋보이는 장면입니다다른 제자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습니다.” 기이한 일입니다이미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방금 잡은 물고기 몇 마리가 아침 밥상에 올려졌을 뿐입니다실은 그것조차 예수님의 말씀에 따른 결과였으나제자들이 애쓴 수고의 덕으로 돌리시는 그분의 마음제자들의 송구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삭여주시려는 그분의 마음이 읽힙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주님을 체험해야 하며어떠한 경우에도 그분의 뜻이 담긴 말씀을 따르는 삶이 신앙생활임을 다시금 배웁니다먹고 살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실 속에서도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계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합니다따라서 그 수고 또는 노력을 우리의 것으로 돌려주시며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주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해야 하고이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바로 이분이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던 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하루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으며우리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이웃을 위해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보아라.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물 던지기를 지시하시는 장면을 전한다. 제자들은 밤새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3절). 아침이 되어 주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6절)라고 하시자, 한 번의 순종으로 풍성한 고기잡이를 경험한다. 이 사건은 단순한 어업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보여 주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만 생명의 열매가 있음을 가르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방향을 잡는 빛이다. 순종할 때, 우리의 허무와 실패는 풍요로 바뀐다.”(Sermo 230,2)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아침(9-13절)에는 숯불 위의 물고기와 빵이 있었다. 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와 죽어야 음식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모습을 상징한다. 빵은 성체성사와 인간 구원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낸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풀이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음식으로 내어주심으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도록 하셨다. 이처럼 부활은 나눔과 생명의 은총을 가져오는 사건이다.”(Homilia in Joannem 85,3) 즉, 오늘의 장면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나누시는 모습을 보여 준다. 
 
복음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된다. ★물 밖으로 나옴: 우리의 편견과 아집, 죄와 자아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죽음의 체험: 나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삶을 통해 부활의 기쁨을 체험한다. ★부활의 생명 나눔: 이렇게 변화된 삶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양식이 된다.(12절) 바오로 사도는 권고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즉, 제자들의 물고기 잡는 이야기는 하느님 안에서 죽고 그분 안에서 살아나는 삶을 상징한다. 
 
물고기 153마리는 모든 민족과 사람을 포함한 교회의 포괄성을 상징한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은 교회가 모든 사람을 품을 충분한 힘이 있음을 보여 준다. 베드로가 그물을 끌어 올린 행위는 사도로서의 사명, 곧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교리서는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사명을 세상에 드러내는 살아 있는 공동체이며, 모든 민족을 품는 보편적 사명을 지닌다.”(763항) 
 

오늘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아침처럼, 우리의 삶도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는 자리가 되어야 하겠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순종, 부활, 나눔의 메시지를 전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을 내려놓고, 그 은총을 다른 이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이병우 신부님_"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요한21,6) 

 
'순종의 결과!' 
 
오늘 복음(요한21,1-14)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우리도 함께 가겠소."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언급되고 있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삶의 자리로 돌아가 고기를 잡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요한21,5.6)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힙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28,10)
이 말씀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대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 결과는 '대박'입니다. 
 
우리는 살고 싶어합니다. 그것도 이제와 영원히.
믿는 이들은 영과 육이 함께 죽지 않고 살아있는 대박을 희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대박을 원하다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예수님 말씀이 곧 '복음'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복음이 전부'입니다. 
 
오늘 독서(사도4,1-12)에서 성령으로 가득 차 있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인 유다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분(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 밖에 없습니다."(사도4,12) 
 

'날마다 복음에 순종합시다!' 

 

송영진 신부님_<“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요한 21,3-6).>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요한 21,9-14).>

1) 이 이야기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하신 다음 말씀들에 연결됩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2ㄴ-14).”

<이 말씀은,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하던 일은 이제부터 너희가 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더 큰 일’이라는 말은 ‘더 위대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더 멀리 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이 말씀은, “너희는 나와 일치를 이루어야만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라는 뜻인데,

“너희는 나에게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사도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항상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고,

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물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일의 결과가 꼭 놀라운 기적인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의 이야기처럼 놀라운 결과를 얻을 때도 있고,

보잘것없는 결과로 끝날 때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 그의 선교활동이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닙니다. 실패로 끝난 때도 많습니다.>

2)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실 때 하셨던 말씀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태 10,12-14).”

복음을 전해 주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스스로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멸망을 당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이니, 복음을 전해 준 이의 책임은 아닙니다.

신앙인의 사명은 복음을 전해 주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까지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과에 연연하면 안 됩니다.

일의 결과는 주님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성실하게 수행하면 됩니다.

<어떤 일에서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면,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일은 주님께서 하시고, 우리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반대로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더라도

실망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정하신 때가 아니었든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주님의 뜻’이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3) 사도들이 고기를 잡으러 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의 일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성령의 은사’를

받기도 전에 무엇인가를 하려고 성급하게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14절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나타나셨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두 번이나 만났었던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해서,

부르심을 받기 전의 생활로 돌아간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의 일은 주님의 힘으로, 주님과 함께

해야 한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주님의 힘을 받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할 일은 ‘기도’입니다.

11절의 ‘153’은 복음의 충만함과 보편성을

상징하는 숫자로 해석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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