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9일 (일)
(백) 부활 제3주일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서울대교구 선교순례단(인준단체) 4월 11일 성지 순례기

인쇄

서울대교구가두선교순례단 [stirene] 쪽지 캡슐

2026-04-14 ㅣ No.1947

서울대교구 가두선교순례단은 한국교회사 연구소 연구위원이신 김학수 바오로 신부님과 함께

춘천 곰실 공소, 죽림동성당, 소양로성당, 화천성당, 철원 김화성당을 순례하였다.

 

<춘천 곰실 공소>

곰실은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의 옛 지명이며,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모체가 된 춘천교구의 요람이다. 1920년 강원도 최초의 본당인 풍수원성당으로부터 분가하여 본당으로 설립되었고, 춘천 지역에서 처음으로 상주 사제를 모신 신앙공동체가 되었다.

당시 관할 구는 춘천, 화천, 양구, 인제, 경기도 가평이었고, 관할 공소는 15개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신자들이 너무 가난해 성당을 짓지 못하고, 초가집 한 채를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곰실본당이 세워지기까지는 한 청년의 헌신적인 전교 활동이 있었다.

엄주언 마르티노(말딩)가 그 중심에 있었다.

공동체는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역할과 책임이 분명해야 한다.

교구 공동체의 초석을 다지는 데에 공헌한 대표적인 평신도 신앙 선조이시다.

그는 신자가 늘어나자 외곽에 있던 공소를 도심으로 옮기기 위해 애련회를 만들어 기금을 만들었다.

말이 아니라 발로 뛴 진심 전교의 표본이시다.

신자들이 모일 땅을 내놓고, 모일 시간과 공간을 만들었다.

그는 신앙이 자라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 것이다.

곰실 공소의 중앙십자가가 그 신앙의 향기를 감돌게 하여준다.

풍수원과 서울을 오가며 다른 회장들과 상주 사제 파견을 요청하였고, 공동체의 중심을 잡고 있었고, 마침내 19209월 김유룡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모시면서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춘천교구는 1998년 장익 주교에 의해 1111일 성 마르티노 축일을 엄주언 마르티노 회장을 비롯하여 평신도 사도직을 모범적으로 수행하며 춘천지역 선교의 초석이 된 평신도들을 기리기 위해 평신도 추념의 날로 교구 고유의 기념일로 제정하여 매년 기념하고 있고, 엄 회장의 신앙적 모범을 기리는 송덕비도 세웠다.

현재 곰실 공소는 거두리 본당 관할로 되어있다.

 

<죽림동 주교좌성당순교 성지(교구 순교자 묘역)>

죽림동 주교좌성당(근대문화유산 등록 문화재 제54)의 전신은 곰실 본당이다.

골롬반회가 건축한 대표적인 석조 건축물로 뽀족한 종탑이 특징이고, 같은 모양의 목재 종탑이 두 개 있다

종탑 한곳에는 승강기가 있고 맞은편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성당 전경과 춘천 시내를 볼 수 있다.

기둥 없는 내부와 아치형 천장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당과 회랑은 성당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가는 잔디 길은 십자가의 횡목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회랑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는데, 십자가의 길을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성당 뒤편에는 25 전쟁 때 순교한 성직자와 교구 사제들의 안식처와, 순교자 현양비가 있다.

춘천교구는 수려한 산과 아름다운 호수,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 위치해 있다 보니 25 전쟁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기도 하다.

 

신해박해(1791-진산 사건의 여파로 박해 시작)와 을묘박해(1795-주문모 신부 실포 사건의 여파로 박해 시작)에 이은 신유박해(1801)에 이르러서는 서울과 경기도에 밀집하여 살던 교우들이 충청도 강원도 등의 산간벽지로 숨어 들어가 교우촌을 이루었다.

강원도에 가톨릭 신자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라고 한다.

 

이렇게 퍼져나간 신앙에 귀의한 초기 교우들 가운데 춘천 신읍리 지방의 최 요한과 회양 지방의 성 조신철 가롤로처럼 1815년 투옥된 이들이 있는데, 성 조신철 가롤로는 강원도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19845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강원도 지방은 천주교가 전래된 지 80여 년 동안, 상주하는 신부 없이도 신자 수가 소리 없이 늘어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1888년 서울에서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에 의해 파견된 파리 외방 전교회의 르 메르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풍수원이 본당이 되었다.

 

풍수원 본당의 교세는 점점 늘어갔고, 1896년 원주 본당을 분할하였고, 1920년에 춘천(죽림동성당의 전신인 곰실) 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그 후 1938년 제5대 유영근 요한 신부까지 방인 사제가 주임을 맡다가

...

193810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춘천 본당 제6대 주임으로 부임함 퀸란 토마스 신부는 부임 직후 약사리 고개 언덕에 있는 도토리 밭을 매입해 현재의 성당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1950년에 죽림동 본당으로 개명하였다.

 

새 성당 건립 중에 25 전쟁이 터졌다. 춘천에는 626일 아침부터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침이 시작된 다음 주일인 72, 퀸란 토마스(Thomas F. Quinlan) 지목구장 신부가 본당 미사를 집전하는데, 인민군이 들이닥쳐 성당 안에서 공포를 쏜 후 20여 명의 교우가 지켜보는 앞에서 캐나반(Canavan) 보좌신부와 함께 체포해 연행해 갔다. 그 후 소위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어 교황 사절 번(J. Patrick Byrne) 주교를 비롯한 외국인 사제, 수녀, 개신교 목사 등 수백 명이 평안북도 어느 험한 산비탈로 끌려가 강제 수용되었는데, 캐나반 신부도 번 주교처럼 그곳에서 모진 고생과 추위를 못 이겨 선종하였다

그래도 19534월까지 34개월간의 포로 생활에서 기적같이 살아서 돌아온 사람 중에는 퀸란 토마스 신부와 크로스비 필립보(Philip Crosbie) 신부도 있었다.

그리고 묵호본당의 라 파트리치오 신부, 소양로 본당의 고 안토니오 신부, 삼척본당의 진 야고보 신부는 모두 아일랜드 출신으로 1950년 남한에서 피살되었다.

이렇게 25 전쟁 중에 순교하거나 납북된 후 모진 고생 끝에 살아 돌아와 선종한 성직자들의 시신은 죽림동 성당 뒷마당의 교구 순교자 묘역에 모셔져 있다.

 

 

 

 

이 밖에도 25 전쟁을 전후로 평강 본당의 백응만 다마소 신부가 연행되어 옥사했고, 의주 본당의 김교명 베네딕토 신부가 행방불명되었으며, 소양로 본당의 콜리어 신부와 홍천 본당의 크로스비 신부도 퀸란 지목구장 신부와 함께 죽음의 행진을 했다.

연길·함흥·원산 지역의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의 남하를 헌신적으로 돕던 양양 본당의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 또한 공산군에게 연행되어 원산 와우동 형무소에 갇혔다가 109일 총살 당하였다.

...

죽림동 주교좌성당은 2003625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

201461일에는 교구 주보이자 본당 주보인 예수성심상(오광섭 작)을 제작하여 시내 중심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성당 입구 언덕 위에 설치하고 축복식을 올렸다

이는 청동 소재로 된 예수성심상 중에서 국내 최대 규모이다.

 

춘천교구 순교자 묘역은 춘천교구에서 활동하다가 선종한 사제들이 잠든 곳인 동시에, 신앙을 증거하고 목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다가 희생된 625전쟁 순교자들이 함께 모셔진 곳이다.

구인란 토마스 주교, 고 안토니오 신부, 라 파트리치오 신부, 진 야고보 신부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고, 북한 지역에서 순교하여 유해를 모실 수 없었던 백응만 다마소, 김교명 베테딕토, 이광재 티모테오, 손 프란치스코 신부의 가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들 중 앤서니 콜리어, 패트릭 라일리, 제임스 매긴, 백응만, 김교명, 양양본당의 이광재 신부는 현재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안건으로 시복 절차가 진행 중이다.

 

<소양로 성당>

콜리어 신부 살신성인 기념 성당으로 195015일 축림동 본당에서 분가해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파트리치오(Patricius)이다.

초대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콜리어(Collier) 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당시 신자수는 약 250명이었고, 발산 공소와 금산 공소가 소양로 본당 관할로 편입되었다.

 

그해 625 전쟁이 발발하자 콜리어 신부는 성체를 옮겨 모시고, 신자들에게 피신할 것을 권고하였고,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627일 죽림동 주교좌성당으로 이동하던 중 복사 김경호 가브리엘과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총살당했다.

이로써 콜리어 신부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가운데 한국 전쟁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집사 겸 복사인 김 가브리엘과 밧줄에 묶여 공지천변으로 끌려가던 콜리어 신부는 가브리엘, 자네는 처자식이 있으니 꼭 살아야 하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재빨리 쓰러지게. 내가 쓰러지면서 자네를 덮치겠네.”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인민군 병사는 경고 한마디 없이 총을 난사했다. 그때 김 가브리엘은 목과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 자신을 끌어안고 쓰러진 콜리어 신부 덕분에 목숨을 건져 훗날 그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김학수 바오로 신부님의 ‘37세의 사랑나눔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현존을 묵상할 수 있는 기도의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대다수의 신부님들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남아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한다. 현장에서 바로 죽이지 않고, 수용소에 끌려가 갇힌 상태에서 강제 노역도 하시고, 추운 겨울에 동사하시기도 하고 그렇게 순교하셨다고 한다.

 

당시 교구장 퀸란 토마스 주교는 한국 전쟁으로 순교한 사제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 곳(소양로, 성내동, 묵호)에 성당을 신축했는데, 그중 소양로 성당이 첫 번째로 건축되었다.

성당 건축을 진두지휘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버클리 신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했다. 밖에서 보면 원을 반 뚝 잘라 놓은 반달형이다.

내부는 제대를 중심으로 회중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어, 신자들 모두가 제대와 사제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전례에 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버클리 신부가 당시 유럽에서조차 드물었던 반원형 평면 양식을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버클리 신부가 1953년 교황 비오 12(Pius XII)에 의해 선포된 성모 성년 때 로마 성지순례를 하는 중에, 현 소양로 성당과 비슷한 성당에서 기도를 바치며, 선교지에 돌아가 성당 지을 기회가 생기면 꼭 이와 같은 성당을 짓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2005415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춘천교구는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콜리어 신부의 순교혼을 기억하고자 소양로 성당을 살신성인 기념 성당으로 명명했다.

현재 춘천교구에서는 콜리어 안토니오 신부의 순교지 확인과 발굴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여러 구술과 기록에 의해 정확한 위치를 찾는 중이다.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시복 대상자인 고 안토니오 신부의 최후 사목지인 소양로 성당과 향후 밝혀지게 될 순교 터에 많은 이들의 순례가 이어진다면 교구의 성지로 선포될 수 있는 중요한 신앙의 터가 될 것이다.

 

<화천 구세주의성당(만산 교우촌)>

지난달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 이어 이번 달에도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 시성 기원 순례를 한다.

 

1997년 한국주교회의에서 시복 추진 결정, > 2001년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에서 시복 안건 심사 착수 > 최양업 신부님은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이기 때문에 성덕 심사와 기적심사가 모두 이루어져야 함. >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성덕 심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2016426일 가경자로 선포되셨다. > 2015년부터 기적 심사가 이루어졌고, 5년간 심의가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215, 시성성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증거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지난 326일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을 위한 교황청 시성부의 기적 심사 절차 가운데 첫 단계를 승인했다고 한다.

의학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시성부 의학자문위원회는 제출된 치유 사례에 대한 장시간 논의 끝에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로 이뤄진 기적적 치유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앞으로 시성부의 기적 심사 절차는 두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최양업 신부님이 복자로 선포될 때까지 계속 기도로 함께 해야 한다.

 

1849년 사제품을 받은 후 1861년 선종하시기까지 해마다 7천 리(2800km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약 400km입니다. 지금은 길이나 좋지~ 그때는 산 넘고 물 건너였다.)가 넘는 길을 걸어 127개 교우촌을 다니시며 신자들과 만나셨다고 한다. 신부님의 사목 범위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까지 5개 도였기 때문이다. 12년간 열과 성을 다하여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푸셨다.

강원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신 가톨릭 신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에 의하면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작은할아버지 최한기 님 이시다.

최양업 신부님 집안의 신앙 내력은 최 신부님의 친필 편지와 그의 조카 최상종(빈첸시오)이 쓴 (최양업 신부 이력서)(최우정 바실리오 이력서), 최 신부의 넷째 제수( 송 아가타 이력서)를 통해 상세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기록들에 의하면 최양업 신부님의 증조부 최한일과 그의 동생 최한기가 1787년 한양에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공주에서 참수, 내포의 사도, 권철신이 스승)에게 세례를 받았고, 이후 얼마 안 가 최한일님은 선종하셨고, 1791년 신해박해의 고초를 겪은 후 최 신부님의 증조모는 12살 외아들 인주와 함께 충청도 홍주 누곡, 곧 청양 다락골로 숨어들었고, 최한기 님의 가족들은 강원도 홍천으로 피신했다가 지금의 풍수원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교우촌 만산(화천성당)은 최양업 신부님은 사흘 길을 걸어 극도로 가난한 다섯 가정이 살고 있는 만산 교우촌을 방문하여 성사를 집전하였다.

이곳 신자들은 살던 고장에서 천주교를 실천할 수가 없어 이곳으로 이사하여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최양업 신부님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작은 촌락은 험준한 산속에 있는데 이름을 만상이라고 하며, 가히 조선의 알프스산맥이라고 말해야 적절할 만큼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교우촌은 근처 조각 공원과 카페를 포함한 일대가 만산 교우촌이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화천 구세주 본당은 소양로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신자들이 증가하면서 1957년 화천읍내에 경당을 마련하고 소양로 본당 관할 공소로 시작되었다. 이후 화천에 신자수가 증가하면서1960년 원천리 공소, 1961년 오음리 공소와 신포리 공소, 1962년에는 삼거리 공소와 사창리 공소가 설립되었다. 1963년 박 토마스 신부는 화천 각지의 공소를 방문하며 본당설립의 필요성을 느꼈고, 지금의 부지를 마련하여 화천 본당을 설립하고 지역 내의 공소를 모두 관할하게 하였다.

성당이 노후와되면서 20015월에는 새롭게 건축한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관할 사창리 공소는 건물이 낙후되어 선교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공소를 건립하고 2015년 축복식을 가졌다.(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김화성당(김성 교우촌)>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 195

김화 성김대건안드레아 본당은 195991일 철원본당에서 분가하여 본당으로 승격,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릿따이다. 19554월부터 3가구가 모여 공소예절을 한 것에서 시작되어 1956년에는 죽림동 본당 공소로 편입되었다가 1957년 철원본당이 설립되면서 철원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593월에 성당과 사제관 건축을 시작하여 완공하고 전임 선교사를 두어 본당 신부의 사목을 돕게 하였으며 구호사업도 전개하였다.

1984년 김화본당 설립 25주년을 지내면서 새 성당을 완공하고,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의 뜻을 기려 주보도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변경하였다.(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성당이다.

 

최양업 신부와 가족들은 안정된 삶 속에서 느슨해지던 일가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기 위한 부친 최경환 성인의 결심을 따라 다락골에서 서울로 이주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웃에게 천주교 신자임을 들켜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워지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김성 교우촌으로 이주하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 나갔다.

최양업 신부와 가족들은 1828년부터 1835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김화읍 김성은 북한 지역으로 김성(금성) 교우촌은 김화성당을 순례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김학수 바오로 신부님의 최양업 신부님의 발걸음을 전해드리며 우리 모두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문을 바쳤다.

 

김화성당을 가기 위해선 신분증이 필요하다.

 

 

 

출처 굿뉴스, 각 본당 홈페이지, 신문기사 등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3 0

추천 신고

서울대교구가두선교순례단,성지순례,4월11일,춘천곰실공소,죽림동주교좌성당,소양로성당,화천성당,만산교우촌,김화성당,김성교우촌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