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3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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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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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1:24 ㅣ No.189237

살면서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비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급한 김에 처마 밑에 있기도 하고, 심한 비가 아니면 비를 맞고 걷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포트워스 본당 신부님의 초대로 포트워스 본당 교우들과 함께 12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장소는 본당 교우가 만든 시골의 별장이었습니다. 신부님과 저는 같은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모닥불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았습니다. 저는 평소 습관대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에 누가 옆에 누워서 저는 신부님인 줄 알았습니다. 옆 침대인데 착각한 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옆 침대에는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별장의 주인인 형제님이었습니다. 거실에서 자던 형제님은 화장실에 갔다가 평소대로 본인이 주로 자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가서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형제님은 미안해했습니다. 저도 거실에서 잠을 자면서 방을 기꺼이 내준 형제님께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44년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저는 신학생이었습니다. 본당 여름 행사를 마친 후에 보좌 신부님과 주일학교 교사들과 안면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숙소로 가기 전에 안면도 해수욕장에서 잠시 바다를 보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교사 한 명과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걸었습니다. 차가 있던 곳으로 왔더니 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행은 우리가 차에 있는 줄 알았고, 차는 숙소로 떠났습니다. 저와 교사는 숙소는 몰랐지만, 근처에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배가 고프니 수박을 하나 사서 나눠 먹고 아카시아 잎을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나뭇잎을 하나씩 떼어내면서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논두렁에 차가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의 차였습니다. 차는 길을 잘못 들어 뒤로 빼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연락할 방법이 공중전화밖에 없었기에 난감했었는데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생각하면 아름다웠던 추억입니다.

 

오늘 독서는 더욱 난감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니아스에게 사울를 만나서 안수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니아스는 예수님께 걱정을 말했습니다. 사울은 바리사이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길 가다가 비를 맞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니아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서 여기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을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니아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울을 만나 안수해 주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토대를 만들었던 사도 바오로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방법으로 구원의 계획을 만들어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를 부르셨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삶을 이끌었던 신념을 버려야 했습니다. 바오로는 정통 바리사이파로 가졌던 모든 권위와 권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박해하는 자에서 박해받는 자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신념과 지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라고 응답하는 결단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바오로는 벼락 맞는 것처럼 삶의 여정에 극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성서는 그런 극적인 순간을 하느님의 부르심, 예수님의 부르심이라고 전해 줍니다. 그러나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서에서 전해 주는 극적인 부르심의 순간은 기억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몇몇 분에게 물어보았지만, 벼락 맞는 것 같은 극적인 순간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극적인 순간은 없을지 모르지만, 세례를 받는 신앙인은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고향 땅을 떠나지 않을지라도, 모세처럼 위험한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을지라도, 첫 번째 제자들처럼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버리지 않을지라도, 바오로 사도처럼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을지라도 세례를 받은 신앙인은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오히려 극적인 순간이 없음에도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20181220일입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 부르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길이 막혀 지하철을 타고 교구청으로 갔습니다. 주교님께서는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을 맡아서 일하면 어떤지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늙은 나이에 고향 땅을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모세처럼 위험한 땅으로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처럼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제 삶의 신념을 바꾸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벼락 맞는 것 같은 극적인 순간은 아니었지만 제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어느덧 신문사의 일을 마쳤고, 지금은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서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방법으로 저를 불러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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