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3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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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님 - 내려가는 길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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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경루카 [achim9202] 쪽지 캡슐

17:33 ㅣ No.189254

오늘 제 마음에 머문 복음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영덕 복사꽃 길
사진 이상각


그들은 길을 떠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향합니다.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무너진 마음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들은 실망했습니다.

믿었던 것이 무너졌고,
희망했던 것이 끝났고,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분이
무언가를 바꾸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자신들의 삶까지 새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십자가 위에서 무너져 버립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방식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담합니다.

어쩌면
믿음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기 기대가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해 주시기를 기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했지만
상황은 그대로이고,
열심히 살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다르고,
믿고 맡겼지만
오히려 더 어두워지는 순간을 만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힘이 들고,
실망하고,
낙담하고,
주저앉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조금씩
엠마오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실망한 사람이 조용히 내려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우리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두 사람이
실망한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다가와
같이 걸어가십니다.

 

골롬바 뮤지엄
사진 이상각


그런데
그들은
그분이 누구이신지 모릅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기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우리에게 오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분은
낙담한 사람 곁에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지친 사람 곁에
말없이 걸어오시는 분입니다.
실망한 사람의 길 위에
동행자가 되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우리 삶의 상처와 슬픔과 아픔을,
우리 안의 어둠과 죄와 죄책감을
그분께 말씀드릴 때,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남양성모성지 누워 계신 십자가
사진 이상각


주님께서는
그들의 대화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 물음은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시는 물음입니다.

그들 안에 쌓여 있던 실망과 상처를
꺼내 놓게 하시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주님은 성경으로 답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영광에 들어가시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으셔야 하지 않았느냐.”

주님은
그들의 실망을 꾸짖기보다
그들의 실망을 새롭게 해석해 주십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십자가가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고통이 없는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길은
그들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들어
그들의 기대와 실망을 설명해 주십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굳어 있던 마음이 풀리고,
식어 있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집니다.

사람의 마음을
깊이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비추고,
우리를 깨우고,
우리를 치유하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가 변화된 것은
어떤 심리적인 위로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걸으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남양성모성지 자비로우신 예수님 상
사진 이상각


그런데
날이 어두워집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며 말합니다.

“저희와 함께 머무르십시오.
저녁이 되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저희와 함께 머무르십시오.
저희 집에 들어오십시오.
저희 식탁에 함께 앉아 주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저녁은
하루 해가 저무는 저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저녁이 찾아옵니다.

마음이 쓸쓸해지고,
그리움이 밀려오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도
피할 수 없는 저녁들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병,
실직,
자녀의 문제,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과 흔들림.

그런 시간이 오면
사람은 비로소 알게 됩니다.

자기 힘만으로는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말하게 됩니다.

주님,
저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주님,
저희 집에 들어오십시오.

주님,
이 어두워지는 시간에
저를 혼자 두지 마십시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부활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주님께 머물러 달라고 청할 때,
그분은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집으로,
우리의 식탁으로
들어오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는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가정으로 들어오시고,
우리의 식탁에 앉으시고,
우리의 외로움과 불안과 슬픔 한가운데
함께 머물러 주시는 분입니다.

두 제자는 
그분과 함께 빵을 나눕니다.

그때
그분이 빵을 들어
떼어 나누어 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곧 그분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십니다.

그러나
사라지신 것은
떠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는
눈으로 붙잡는 방식이 아니라
더 깊은 방식으로
그분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분을 만난 다음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내려오던 사람들이
다시 올라갑니다.

실망하며 떠났던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부활은
바로 이런 희망을
우리에게 줍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고,
내려가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올라가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집에 머무시는 주님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우리의 눈은
어떻게 열릴 수 있을까요.

아마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우리도 빵을 떼는 자리에서
그분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성찬례 안에서 그렇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고,
빵을 떼어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러나
미사 중에만
그분을 알아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남양성모성지 묵주기도길
사진 이상각


우리의 일상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가정 안에서,
식탁에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
지친 얼굴을 바라보는 그 자리에서
주님은 이미 함께 계십니다.

문제는
주님이 안 계셔서가 아니라
우리의 눈이 닫혀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언제 열릴까요.

감사할 때입니다.

빵을 들고
감사드릴 때입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하루를
선물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할 때,
그때
우리 눈이 조금씩 열립니다.

또 우리의 눈은
나눌 때 열립니다.

내 것을 움켜쥘 때보다
내어놓고 나눌 때
주님은 더 선명하게 드러나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마음을 떼어 주고,
시간을 떼어 주고,
용서를 떼어 주고,
사랑을 떼어 줄 때,
그 자리에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은
사랑할 때 열립니다.

같은 집에 살아도
마음이 굳어 있으면
주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합니다.

식탁에 앉아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조금 더 오래 들어 주고,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고,
조금 더 참아 주고,
조금 더 품어 줄 때,
우리의 집은
그냥 집이 아니라
주님이 머무시는 곳이 됩니다.

어쩌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대단한 신비 체험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 속에서
그분의 현존을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내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
내가 돌보아야 할 가족,
내가 들어 주어야 할 한 사람,
내가 용서해야 할 한 사람,
내가 다시 사랑해야 할 한 사람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르십시오.

저희 집에 들어오십시오.
저희 식탁에 앉아 주십시오.
저희 눈을 열어 주십시오.

말씀으로
저희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빵을 떼어 나누는 사랑 안에서
저희가 주님을 알아보게 하십시오.

그래서
내려가던 저희 마음이
다시 올라가게 하시고,
실망하던 저희 삶이
다시 희망을 품게 하시며,
저희도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기쁜 소식을 안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십시오.

기쁨은
자기 안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기쁨은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흘러넘치는 기쁨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기쁘게 길을 떠났습니다.
기쁨을 안고 돌아갔고,
기쁨을 전했습니다.

부활은 기쁨입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기쁨이고,
절망을 넘어서는 기쁨이며,
무너진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안에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쁨은
결코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밖으로 흘러갑니다.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세상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넘쳐흐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이 기쁨이 있는가.

정말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는가.

이 기쁨의 원천은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분의 성체입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도
바로 그랬습니다.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졌고,
빵을 떼실 때
눈이 열렸고,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내려가던 사람들이
올라갔습니다.
실망하던 사람들이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기쁨을 지닌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사랑이 되어
다시 사람에게로 흘러갑니다.



위의 글은 이상각 신부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출처] 내려가는 길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로. 엠마오로 가는 길|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 블로그https://blog.naver.com/rsony4u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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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이상각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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