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7일 (월)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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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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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6-04-26 ㅣ No.189291

 

2026년 4월 26일

부활 제4주일

작은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이 물고기는 헤엄치며 무엇인가를

찾는지 계속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 나이 많은 물고기를 만나서,

“어떻게 해야 바다를 찾을 수 있을까요?

라고 묻습니다. 나이 많은 물고기는

“바다? 너는 지금 바다에 있단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물고기는 화를 내며 말합니다.

“여기는 물이에요. 제가 찾는 것은

바다라고요.” 바다에 살고 있으면서도

바다를 찾고 있습니다. 듣지 않으려는

마음이 계속 바다만 찾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주님 뜻에 맞게 사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

보다 세상의 말을 들으려고 합니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길이

더 현명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참된 목자와 양의

관계를 이야기하시면서 전해주십니다.

우선 참된 목자와 양의 관계는 목소리를

알아듣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 그냥

수많은 양 떼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존재로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시면서 일대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력이

약한 양은 철저하게 청각에 의존해서

목자를 따라갑니다. 나를 유혹하는

세상의 많은 소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 참된 목자의 목소리를

구별하고 그분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참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뒤에서

채찍질하면서 양들을 억지로 몰아대지

않습니다. 대신 양들이 가야 할 거칠고

험한 길을 먼저 걸어가시며 앞장서십니다.

십자가 역시 우리가 짊어질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먼저 앞서 짊어지셨기 때문에,

안심하고 그 뒤를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 10,7)라고 하십니다. 이를 이해

하려면 고대 중동의 양 우리를 알아야

합니다. 돌로 담을 쌓고 뚫려 있는 입구에

목자가 직접 가로누워 잠을 잤다고 합니다.

목자 몸 자체가 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사나운 짐승이

들어올 수도 또 양이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온몸을 바쳐

우리를 보호하시는 절대적인 피난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우리는 과연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따릅니까? 두려움과

불안을 조장하는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내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평화로 이끄시는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 안에서 참된 안식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한 소통은 문화로 소통하고,

감성과 영혼의 언어로 소통하고,

칭찬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사색의 향기 정석 중)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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